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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Feb 14. 2016

여행에서 어떤 보상을 받고 싶으세요?

After-여행 스트레스 극복기


여행은 그대에게 적어도 세 가지의 유익함을  가져다줄 것이다.
하나는 타향에 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며,
마지막 하나는 그대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브하그완-



대학교 저학년,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얼마큼 변했고 무엇을 얻어냈는지 끈질기게 알아내려고 했었다. 내가 쓴 시간과 노력에 대해 보상받아야 한다는 집착으로 똘똘 뭉쳐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고 의미를 찾지 못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았다. 집착이 강했을 때 나는 결국 내가 찾고 싶던 '그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더 우울해졌고 바닥으로 가라앉았었다. 


바깥을 많이 바라봤었다


실은 모든 행동에 대해 의미를 찾으려 하는 건 나의 집착적 버릇이었다. 흔히 말하는 '공부하던 버릇'은 나의 깊은 life DNA였고 떨쳐내려야 떨쳐낼 수었는 것이었다. 대학교 3학년, 4개월의 교환학생을 끝내고 8개월 간 여행을 했었다.  1월부터 8월까지 꼬박 8개월을 집 없이  떠돌아다녔고, 한국을 벗어난 것까지 합치면 정확히 364일을 해외에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었을지 모르는 여행이었다. 질리도록 여행했고,  집에오기 3개월 전 쯤부턴 처절하게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것 잘 해보라고 다독여주는 엄마 덕분에 여행을 끝낼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앞을 달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남유럽을 거쳐 멕시코로, 남미를 지나 다시 중미, 그리고 마지막 일주일 간의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휴식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의 여행을 응원해 주었다. 멕시코에 폭동이 나면 걱정의 문자를 보내주었고, 간간이 올리는 나의 페이스북 포스팅에 댓글로 힘을 실어주기도 했었다. 여행 동아리를 했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친구로 많이 둔 나는 어찌 보면 그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여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행하고 있는 나에게 부럽다고 얘기하는 친구들이 꽤나 많았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그들의 부러움의 힘으로 여행을 했던 것 같다. 남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나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 내 잘난 맛에 사는 재미일 수도 있기에 말이다.


많이 웃었고 많이 울었고 많이 힘들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여행이 끝난 후에 터졌다. 8월에 한국에 돌아와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에게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있었다. '남미는 어때? 거기선 뭘 느꼈어? 이제 앞으론 뭐할 거야? 책 좀 써봐!' 등등의 눈 반짝임을 수반한 질문들. 어릴 때부터 알던 어른들은 더 호들갑이었다. 내가 인생의 큰 '깨달음'을 여행에서 얻어올 것이라 생각하셨는지, '전 세계를 돌아다녔으니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뭐야?'라고 종종 질문하시곤 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내 여행을 무언가 매우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하셨다. 난 이런 질문폭탄 속에서 엄청난 혼란에 빠졌었다.


내가..... 무언가를 깨달았어야만 했나?


내 여행은 굉장히 순탄했었다. 처음이자 (아직까진) 마지막으로 당했던 소매치기는 한창 전 라오스에서가 다였다. 만나는 사람의 반 이상은 당했던 소매치기도, 사기도, 강도도 나는 비껴갔다. 좋은 사람만 만났고, 돈 낭비했다고 생각해본 순간도 없다. 음식은 맛있었고, 배탈이 나거나 아파본 적도 없으니. 딱히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여자 혼자' 혹은 '중남미' '서유럽' 여행의 어드벤처는 없었다고 난 생각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생각에 누굴 만나기 싫어졌다. 항상 배움의 중심에 있는 나였는데, 그 긴 시간동안 깨달음 없이 지냈다는 생각을 하니 절망적이기까지 했다. '재밌는 일 없었어?'라고 묻는 말에 대답해줄 이야기가 없었다. 나는 내가 여행 전과 후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이들은 8개월 여행을 포함한 나의 12개월 해외생활이 나를 (보헤미안적으로) 많이 변화시켰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똑같은 집에, 똑같은 학교, 똑같은 친구들을 만나며 같은 패턴으로 살아가려 한국에 왔기에, 봉사를 하며 살거나 여행사를 취직하거나 평생 여행만 하며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평범하게 졸업해서 대기업 입사를 해보고자 하는 누구도 할 수 있는 생각뿐이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라 생각했었는지, 무엇이 바뀌었냐고 물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나의 우울함을 더했다.


나만의 철벽 성에 갖혀 살았음을 알게 되었지


그렇게 나는 생활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자아를 찾을 거야!'라며 야심 차게 떠난 여행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몰려왔을 때,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리고 여행에 다녀와 6개월이 지난 후, 상담을 통해 나를 차차 발견하면서 내가 많이 변했음을, 여행이 나를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었음을 결국 인정했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변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고, 어떤 모습이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You are Blessed as You Are


상담받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순간은 상담사 선생님이, '이지씨는 스스로를 잘 돌아보는 편이에요. 비판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면서 맘에 안드는 것을 고쳐나가려는 걸 잘하는 것 같아요! 그럼 이제 본인 칭찬 좀 해보시겠어요?'라고 물었을 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답을 못하고 벙쩌있었던 찰나였다. 그 찰나, 그 자리에 앉아 말도  못 하고 펑펑 울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문장은 하나였다.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했지?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필터를 갖고 사는지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때의 나는 자존감이 한없이 낮았고, 자존심은 매우 셌다. 나의 허물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었고, 실수가 용납이 안되었다. 실패를 두려워했고, 실패할 것 같은 일은 모두 피하려고만 했다. 내가 변하는 모습도 싫었다. 사람은 여성스럽거나 남성스럽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여성스러운 사람인데 누군가 나에게 남성적이라고 하면 싫었고 상처를 받았었다. 나는 한결같고 싶었는데 한결같지 않은 나 자신이 싫어 계속 방어하고 밀어내고 인정하지 않았다. 


모범생인 나는 항상 모범생으로 살고 싶어했다. 누군가 나에게 나의 기준보다 더 기대하여 실망하고, 덜 기대하여 무시하는 것이 싫었다. 나에겐 셀 수도 없이 많은 다른 모습들이 있는데도 내가 바라는 하나의 모습으로만 살아가길 스스로에게 강요했다. 늦잠을 자는 내 모습이 싫었고, 시간을 버리는 내 모습이 싫었다. 손해 보는 내 모습, 누군가 질문했을 때 대답 못하는 내 모습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우리 아빠는 나를 이렇게 키웠는데, 나는 갖혀있었다


여행과 상담 이후로 나는 어떠한 내 모습도 받아들이고자 마음먹었다. 나의 좋은 모습도 인정하고, 나의 싫은 모습도 드러내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내 모습도 들어보기로 했고, 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으면 '다양성' 항목에서 나의 성적은 바닥을 기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금 여행 전 내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나는 변화했기에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치열하게 생각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은 나와 대면하는 것이 많이 편해졌다.



여행은 그대에게 적어도 세 가지의 유익함을  가져다줄 것이다. 
하나는 타향에 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며, 
마지막 하나는 그대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브하그완- 


처음 인용했던 브하그완의 구절이 절절히 공감되는 시간이였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았고, 서울과 대한민국이 얼마나 좋은지 발견했고, 나를 깨우쳤다. 여행이 나에게 준 것은 단순 경험과 눈에 보이는 지식 뿐이라 생각하고 나의 마음엔 강철 벽을 장착하여 한국에 돌아왔는데, 지나 보니 여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여행을 다니며 굳이 무언가 보상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여행은 그 자체로 나에게 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면을 인정하게 하고,  바깥세상과 안 세상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자연 도와주고 그것은 내 삶을 천천히 바꾼다.


첫 배낭여행 때부터 지금의 나까지, 변한듯 변하지 않아 자연스럽다


오늘 아침에도 난 늦잠을 잤고, 엄마랑 말다툼을 했다. 침대에 발등이 찍혀 욕을 했고, 아침에 좀 일찍 나와 책을 보고자 했으나 그냥 늘어져있었다. 하나같이 내가 싫어하는 모습들이지만 그럴 때도 있다고 받아들이고 토닥였다. 아직 나는 자존감 회복 중이니까.                                                                   


어느 순간 마음을 비우니 자연스레 알게되더라. 내가 무엇을 배우고 느껴왔는지. 그 배움이란 건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라 내가 배우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늦게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대기업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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