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 Feb 28. 2016

그들은 순수하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유

학부 '60년대 저항문화' 수업에서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 강력한 환각제)에 대한 강의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었다.  Tom Wolfe의  베스트셀러 북인 <The Electric Kool-Aid Acid Test>에서 그가 LSD의 사용을 옹호하면서 하는 말이다.


 'LSD는 세상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게 해.'


이 말에 난생 처음 마약이 궁금해졌다. 중독과는 거리가 먼 내가, 일말의 시도조차 해볼 생각 없던 마약이 궁금해졌다. Tom Wolfe가 아이의 눈으로 예술의 혼을 살리고 싶다고 주창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이해되었다.


사진기만 보면 장난기를 내뿜어 대던 인도 아이들


나이 들어가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경험이 쌓여 성숙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기에 나이 듦을 좋아했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항상 잃는 것이 인지상정. 내가 나이 들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순수함'이다. 어떤 것을 바라볼 때 마치 그것을 처음 보는 듯 놀라워하는 순수한 눈이 아쉬웠다. 경외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나는 점점 어려웠다. 아는 것이 많아지고 익숙한 것들이 늘어가면서 새로운 것은 당연히 줄어만 갔다.


발리 북부 시골마을의 소녀아가씨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좋았다. 그들이 하는 대부분의 행동들이  '난생처음'이었기에 그들은 '아이답게' 행동했다. 처음 걸음마를 떼고, 처음 외국인을 만나고, 처음 사과를 먹어본다. 처음 여행을 하고, 처음 학교를 가고 처음 벚꽃길을 걸어본다. 모든 것이 얼마나 벅차도록 신기할까. 그런 시각이 사무치게 부러워 Tom Wolfe가 말하는 LSD를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나마 억지로라도 순수하게 무언가를 바라보고 싶었다.


여자아이들은 꺄르르 웃으며 달려온다


물론 마약이 중범죄인 한국에 사는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었기에 LSD를 실제로 시도해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로부터 배울 기회를 자주 만들었다. 아이들을 자주 만나고 아이들을 접할 수 있는 활동들을 종종 했었던 것이다. 그 중 제일 좋았던 것은 학부 시절 2년간 신촌 세브란스 병원 어린이 병동에서 했던 교육 봉사이다. 분야는 그림과 풍선아트. 처음엔 아이들과 만들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했었고, 그 후엔 풍선아트팀에 배정받아 수없는 강아지와 풍선 칼을 만들었었다. 그때 배운 것이 많다.


내가 보는 것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 시선은 '무궁무진'하다는 것.


아이들은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바닷속을 그리는 활동을 한 적이 있다. 한 아이가 초록색 돌고래와 핑크색 거북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물었다, '돌고래가 초록색이야? 보통 회색이지 않아?' 아이는 '아니에요. 저 멀리 바닷속엔 돌고래가 초록색일 수 있어요. 그리고 초록색 돌도 있잖아요. 그니까 돌고래는 모든 색일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교육봉사를 시작하던 초반이었는데 그 말이 번개처럼 머릿속에 스쳐 짜릿한 번쩍임을 주었다. 아이들의 그림에 손을 대어 내가 생각하고 아는대로 색을 칠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 작은 눈으로 보는 관찰력은 지극히 섬세하다


실제로 볼리비아 아마존엔 나는 상상치 못했던 핑크색 돌고래가 살고 있고, 심해에는 둘리에서 볼 법한 불빛 달린 물고기도 존재했다. 아니,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고를 넘어 내가 '알고 있는 시각'에 갇혀 더 이상 상상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펐다. 거북이가 초록색이 아니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꼰대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강력하다




며칠 전에 The Story of My Life라는 뮤지컬을 봤다. 토마스와 앨빈이라는 두 남자의 우정을 다룬 뮤지컬인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앨빈의 장례식에서 토마스가 송덕문을 읽으며 지난 시절을 계속 회고하는 것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그 회고는 대부분 그들의 어린시절을 기록한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죽으면 다 좋은 말만 해주네? 죽으면 좋은 곳으로 간대!'
'좋은 곳? 어디?'
'음.... 디즈니랜드 같은 곳인가 봐!'


'우와, 죽으면 좋은 곳에 가는구나'


학교 선생님의 장례식을 몰래 훔쳐보던 12살 어린 소년들의 대화였다.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아이들은 장례식이 신기했을 것이다. 죽으면 좋은 곳에 간다는 어른들의 말이 그들에겐 얼마나 흥미로웠을까. '죽음'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이고 충격적으로 인식하는 나는 이 장면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다.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인도인들은, 순수하다 느껴진다-


뭐든 아이처럼 세상을 받아들이는 피터팬이 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강렬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녹여내고 싶었다. '죽음'이 어쩌면 나를 힘들 게만은 하지 않는 존재일 수 있고, 세상은 살면 살수록 '헬'이 아니라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아이의 호기심과 어른의 성숙함으로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나를 억누르는 감정과 편견을 조금이나마 깨부수고 반짝이는 눈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을까. 오늘도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



작가의 이전글 여행에서 어떤 보상을 받고 싶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