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집 나가는 엄마
내가 몇 살이었을까? 언젠가 엄마에게서 오빠와 내가 어릴 때부터 우유배달을 나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렴풋이 유치원을 다녔던 6살에 혼자 씻고 챙기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새벽에 나가서 한 구역을 돌고 나면 아빠 출근시간과 우리의 등원시간에 맞춰 들어오셔서 바쁜 아침을 챙겨주고 다시 나가셨을 거다. 그때 엄마가 서른 즈음이었다.
서른이라니! 난 서른에 천지도 모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며 다 정리하고 호주로 홀연히 떠나 자유를 만끽하던 철없던 나이였는데 엄마는 그 찬란한 서른에 어두운 새벽을 매일 나갔다. 안 무서웠을까? 힘들었겠지? 그만두고 싶었을 텐데 어떻게 견뎠을까? 우리 때문일까? 아마도 그렇겠지?
내가 사춘기던 중학교 시절,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엄마의 우유배달구역에 있었다. 가끔 등원길에 우유를 한가득 싣고 배달 가는 엄마를 마주치곤 했다. 너무 싫었다. 그땐 부끄러웠다. 사춘기의 마음이라 쳐도 참 못됐었다. 엄마는 그걸 알았을 텐데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도 딸이 엄마를 부끄러워한다는 걸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눈이 오면 자전거를 끌어가며,
한 더위든 , 추위든 새벽 4시면 엄마는 자전거를 타고 나가셨다.
한참 전부터 미라클모닝이 유행처럼 번졌다.
새벽 기상을 하고, 명상이나 독서를 하고... 그 미라클모닝은 내가 원해서 나의 삶을 위해서 하는 거지만 엄마의 새벽 4시는 먹고사는 문제의 삶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새벽 늦게 잠들고 아침잠이 많은 나는 여행이나 병원 스케줄 아니면 그 시간에 잠이 들면 들었지 깰 수는 없는 시간.
출산을 하고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 새벽에 깨서 유축을 하고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그 새벽의 고요하고도, 적막함을 느끼며 외로웠던 시간이 있다. 그때부터였다.
엄마를 여자로 , 한 사람의 인생으로 다시 보기 시작했던 게.
가족을 너무 사랑하는 우리 엄마는, 책임감이 강해서일까? 모성이 강해서일까? 아님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고 살아온 걸까? 그 어떤 것이라도 난 엄마처럼 살 수 없다. 자신이 없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복직을 못한 채 실업급여,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면서 집가까이 시간제일자리, 다시 실업급여, 취업지원제도지원금... 이렇게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보태왔다가 여러 이유로 남편 혼자 외벌이가 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내가 아끼면, 조금만 악착같이 하면 세 식구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급여를 받아온다. 하지만 난 무언가를 하고 싶고, 늘 무언가를 배우려 하고, 아이에게 더 좋은 걸 해주고 싶다. 그러다 보니 생활비는 늘 턱끝까지 찬다. 그러면 난 알바자리를 뒤져보고,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엄마도 그래서 그 새벽 4시를 놓지 못하셨겠지? 조금이라도 더 벌면 집에 보탬이 되니까.. 새끼들 먹고 싶은 거 , 하고 싶은 거 해줄 수 있으니까... 아직도 새벽이면 엄마는 출근한다. 이제 4시는 아니지만 예전만큼 돈이 많지도 않지만 손주들 용돈도 주고, 본인들 생활비도 하시고,,
은퇴를 할 수 있을까?... 은퇴라는 걸 과연 시켜드릴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이렇게 있으면서 엄마를 쉬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엄마를 위한 건데.. 과연 난 새벽 4시면 나가는 엄마의 아침 늦잠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