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봐도 또 좋아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원더풀 라이프>

by 수수
사랑하면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어 진다.
봐도 봐도 좋으니까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사람도, 음식도, 책도, 영화도 다르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자주 다시 봤던 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였다. 피로에 지친 삶에서 그의 영화는 휴식이기도 하고 위로와 격려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의 영화는 혼자서는 물론이고 누구와 함께여도 언제나 실패 없는 선택이다.


최근에 엄마와 함께 <원더풀 라이프>를 보게 된 건 아기를 낳고 산후조리를 위해 친정집에 머물면서였다.


영화, 미술, 음악, 문학 등의 여러 예술 작품들 중 다른 그 어떤 장르도 아닌 꼭 그 장르로만 선택해야 했을 때, 그 장르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을 때 그 작품은 가장 빛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하고 싶은 말들이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예술이라고. <원더풀 라이프>는 이 두 가지를 두루 갖췄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너무나 단순하고 게다가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름다운 순간들만 차곡차곡 그곳이 천국

지옥 같은 건 애초에 없는, 모두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을 평등하게 허락하는 천국만 있는 이 영화의 세계관. 어쩌면 천국과 지옥을 문자 그대로 믿는 엄마가 불편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둘 중 누구도 그런 가치관을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영화의 질문에만 집중할 뿐.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두고두고 남기고 싶은 기억은 뭘까? 그리고 엄마는? 내 아기는?


우리는 누구도 그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서로에게 좋은 기억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관계라서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럴 수 없는 사이기도 하다. 삶의 질곡을 오래 함께 하면서 상처를 주지 않고 살 도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불가능한 일을 다시 또 다짐해 본다. 내 아기에게만큼은 좋은 기억만 가득 만들어 주겠다고.

우리 손도 차곡차곡
누구에게나 작은 구슬 하나가 바다이고 우주였던 시절이 있었다. 마음의 성장판이 닫힌-다친 사람에게도 현실이라는 라무네 병을 함께 깨뜨려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시절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는 그의 희망을 나 역시 믿는다.
<어떤 가족>을 보고 난 후의 단상

나는 고레에다가 그리는 희망 판타지가 좋다. 그가 긍정하는 세계와 그가 애정 하는 사람들이 좋다. 비록 현실은 그가 보여주는 것처럼 아름답지 않다고 해도 지금은 냉소적인 시선보다는 따듯한 빛을 쬐고 싶다.

그것은 그들이 가장 경멸하는 부시가 상대를 업신여길 때 짓는, 품성이 결여된 경박한 웃음과 어딘가 깊은 곳에서 통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결함은 문제 삼지 않고, 상대를 이해력 없는 바보라고 생각한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결여된 이러한 품위 없는 태도가 부시의 본질이라면, 설사 부시를 향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쪽은 결코 그 태도를 취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진정한 의미의 ‘반反부시’가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걷는 듯 천천히」 중에서

삶의 누추함을 견뎌야 할 때 냉철하게 도움되는 말보다는 따듯한 말 한마디 더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과 관계에 대한 고레에다 감독의 깊고 넓은 마음은 어느 작품에서나 바다처럼, 우주처럼 빛난다. 정글 같은 인간 사회에 그가 제안하는 타자에 대한 상상력은 한결같이 품격 있고 다정다감하다.


넘치는 영화들 중 피로도에 밀려 선택이 더디어질 때, 그땐 다시 봐도 또 좋은 영화를 곁에 재생해 두길.

영화표도 차곡차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