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던 약자들이 만들어가는 어떤 잔혹한 동화 이야기

by 푸른전구빛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제1의 취미는 영화였던 것 같다. 물론 게임도 많이 하고, 책도 종종 읽고, 스포츠도 보고, 여러 취미가 있지만 힘든 공부 중에 깜깜한 영화관에서 큰 생각 없이 2시간, 길게는 3시간씩 지내다 보면 복잡한 머리가 절로 비워지는 기분이 드는 게 정말 좋은 점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보던 영화라 최근에 유행하는 OTT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학업 생활에는 상당한 도움이 됐을 터.


요즈음에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를 보는 빈도도 주는 건 덤. 지난달까지는 거의 보지 않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번 달에는 열심히 노력해서 10편 가까이 보는 중이다. 대신 지금까지 힘들게 달려오던 여정을 잠시 쉬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니, 우리 사는 사바세계가 굉장히 어지럽다는 것을 많이 실감한다. 이전에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겠으나, 잠시 자리에 멈춰 흘러가는 상황을 좀 더 유심히 바라보게 되면서 그 절대다수는 부정적인 소식과 매일 같이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고들, 속이 꽉 막히게 하는 사건들인데 이러한 과정을 계속 지켜보면 볼수록 암울해지만 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미안한 말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예전부터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 왔고 최근에는 이러한 생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은 약자를 배려해주지 않는다. 어차피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힘센 자가 독식하는 게 우리의 세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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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보게 된 영화가 바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유명한 영화는 아니지만 19년 만에 청룡영화상을 찾은 이정현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극장 관객 4만 명의 영화라 예전부터 궁금했었고, 개봉 당시에는 청소년 관람불가인 이 영화를 볼 수 없다가 이제야 접하게 되었다.


초반부의 음산함으로 시작되는 90분의 짧은 이 작품은 마치 나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는 주인공이지만 몇 번의 불행, 그리고 잔혹한 현실은 성실했던 소녀를 잔인한 미치광이 괴물로 만들었고 그런 그녀에게 해피엔딩은 찾아오지 않는다.


잔혹동화의 결말을 목도한 나는 울었다. 단순한 눈물 한 방울이 아닌, 정말 베개를 품에 안고 펑펑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가도 과연 그것이 정답인가? '3포 세대'를 넘어 '5포 세대', '7포 세대', '9포 세대'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지는 배경을 생각한다면, 무한 이기주의가 성행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보면 노력을 하라는 그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아프니까 청춘이라던,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던 그분께 질문하고 싶다.


또 하나 정말 슬펐던 점은 이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약자라는 점이다. 주인공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앨리스의 남편이나 피해자들도 분명히 강자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즉, 이 끔찍한 이야기는 결국 약자와 약자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벌이는 생존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말은 모두가 파멸하는 피로스의 승리에 지나지 않았고. 단순히 세상이 미운 것도 있지만, 이 점을 깨달았을 때 정말 이 이야기의 비극성이 극에 달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실제로 이런 식으로 벌어지는 범죄가 존재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것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가게 만드는 이 세상을 한번 원망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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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우울한 주제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면 나는 이정현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잘 몰랐다. '와'나 '바꿔' 같은 노래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꽃잎>이라는 유명한 출연작이 있다고는 하지만 태어나기도 전 영화라 존재도 잘 몰랐던 영화(였는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때문에 대충은 알게 된...)였는데, 정상급 가수였던 그녀가 이 정도로까지 극을 이끌어가면서 폭발적인 연기를 보여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아마 천재일 것이다. 물론 상업 영화에서 이 정도 영향력을 끼칠 정도의 단독 주연을 맡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고 이 영화 이후 찍은 여러 작품들을 봤을 때 아마 맞는 듯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만으로 이정현이라는 배우가 앞으로 보여줄 또 다른 연기에 대해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 부제목을 제외하면 수정 하나 없이 이 글을 쓰고 제출해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는데, 어떻게 합격한 걸까...? 모르겠지만 이왕 붙여주신 거 하나를 쓰더라도 열심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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