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2>를 본 후 글을 작성하면서 그전에 작성해 놓은 델리스파이스의 <기쁨이 들리지 않는 거리>를 다루었던 글과 연계되는 점이 묘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가족에 대한 글을 써놓고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정도면 이걸 노리고 영화를 골랐나 싶을 정도인데 사실은 그냥 우연의 일치로, 몇 개 있지도 않은 글에서 각각 이어지는 주제로 작성할 수 있는 점이 참으로 신기하다.
<가족의 탄생>은 필모그래피보다도 탕웨이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듯한 김태용 감독의 작품이다. 사실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굉장히 작품이 많은데, 대부분이 단편 영화 내지는 도전 정신이 깃든 실험적인 영화다 보니 막상 감독으로서 장편 영화를 연출한 적은 상당히 적다. 1999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로 장편영화계에 데뷔했으며, 2006년 오늘 글의 주제이기도 한 <가족의 탄생>, 2011년 이만희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만추>, 그리고 13년 만의 복귀까지. 우리가 잘 모를 만한 활동은 많이 있었지만 장편 영화만 볼 경우 거의 강산이 한번 바뀔 때마다 대중들에게 다가오는 감독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김태용 감독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비록 대중적으로 크게 흥행한 작품을 제작하지는 않았지만, 전작들에서 지속적으로 좋은 평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세 편 모두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평론가와 관객을 가리지 않고 호평을 받았으며 영화 마니아들 중에서는 최고의 한국 영화나 한국 영화감독 중 하나를 꼽을 때도 종종 언급되고는 했다. 이에 그의 다음 작품에 목말라하며 기다리는 사람들도 당연히 존재했으나, 가혹하게도 그는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다시 한번 우리 앞에 스크린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기나긴 시간이 흐르고 개봉한 <원더랜드>. 사실 앞에서 말한 대로 기대도 많았지만 개봉 당시에는 우려의 시선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호평으로 가득 찬 필모그래피와 매력적인 배우 라인업에도 가장 걱정했던 원인은 개봉 시기가 지나치게 밀렸다는 점. 물론 촬영 당시에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며 어느 정도 지연되는 것은 용납되었지만 박보검이 입대 전 촬영했던 영화가 전역 후에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보기 힘든 경우였다. 그리고 보통 이러한 '창고 영화'들은 작품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니까, 납득 가능한 사유가 존재한다고는 하나 확실히 염려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쉽게도 좋지 않은 평으로 돌아왔다. 좋게 표현하자면 호불호가 갈린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이 영화로 인해 전작들의 훌륭함까지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매력적으로 보였던 배우진은 익숙한 조합으로 인해 오히려 독이 되었고, 소재는 합격점이었으나 이를 풀어내는 세계관과 플롯에 있어서는 불합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나름의 감동을 주려고 노력하긴 했으나, 원래 김태용이라는 감독에게서 나오던 우리가 기대한 자연스러운 감성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원래 다루려고 했던 <가족의 탄생>으로 돌아가보자. 사실 이 영화도 다양한 사람들 간의 관계를 다양한 이야기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원더랜드>와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가족의 탄생>이란 영화는 시대를 앞서간 영화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우리나라의 가족은 혈연에 묶여있는 느낌이 상당히 강하다.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족'이라는 의미를 사전이나 법전에서 알아보면 인정해 주는 그 범위가 그리 넓지 않다. 법적으로는 특히 더 좁고. 당시까지 남아 있던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혼인을 제외하고는 피를 나누지 않으면 가족으로 인정받기 힘든 사회적 관념을 생각해 볼 때 이 영화는 상당히 색다른 시각에서 가족이라는 개념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탄생하는 가족은 현재의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가족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가족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 하면은 그것도 아니다. 피를 나눈 사이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 그들은 우애 깊고 서로를 사랑하며 어울리는 가족이다. 물론 세상 어느 가족들도 그렇지 않듯이 곧바로 잘 맞아떨어져 사이좋게 지냈을 리는 없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적응해 가는 과정도 길었겠지만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던, 우연과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맺어진 이 사람들은 최소한 말로만 그리고 피로만 이어진 가족들보다 훨씬 보기 좋은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중반까지는 무슨 이런 영화가 다 있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냥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이 영화가 대체 어떤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거지 싶기도 했는데, 역시 영화는 끝까지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내가 볼 때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냐?'는 말은 분명 틀렸다. 결말이 다가왔을 때 감독은 지금까지 나왔던 모든 이야기를 한데 엮을 수 있었으며 그 속에서 관객에게 가족이라는 정의에 대한 의문을 던져 능동적이고 새롭게 생각해 보도록 유도할 수 있었고 억지스럽지 않은 따스한 감동까지 얹을 수 있었다. 거기에 인상 깊고 참신한 엔딩 크레딧의 보너스 장면은 덤. 그렇기에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는 아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훌륭한 영화로 다가왔으며, 또 그렇기에 <원더랜드>라는 작품이 더 아쉽게 다가온 것이 아니었을까?
꼭 굳이 가족에 관한 것만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담백하게 내뱉는 대사가 상당히 인상 깊은 영화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구질구질한 게 아니라, 정이 많으셨던 거야." 같은 대사에서는 '그 둘은 어찌 보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구나. 정이 없는 관계라면 구질구질할 필요도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데... 헤픈 거 나쁜 거야?"라는 대사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위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헤프다고 다소 부정적으로 폄하해도 될까?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결국 서로를 사랑하며 또 하나의 가족으로 지냈던 그들의 상황을 비추어 볼 때 '헤프다'라고 언급된 모습은 사실 당연한 게 아니었을까? 또 그렇게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마구 나누어 주는 행동이 정말 나쁜가?' 싶기도 했다. 보는 시각에 있어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고민을 앞장 서서 이끌어 가면서 더욱 매력 있고 빛나는 영화가 된 <가족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번에 나온 영화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존재했지만 그렇다고 김태용 감독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기는 쉽지 않다. 기존의 작품들이 워낙 수작이기도 했거니와, 이번 영화가 소재적으로 많이 달랐던 터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스타일의 변주를 시도하려다 벌어진 아쉬움일 수도 있겠다. 혹은 정말로 역량이 하락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더욱 발전하여 좋은 작품으로 다시 복귀하기를 이런 글로써나마 바라고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