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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Jul 03. 2021

라면

열두 시에 수업을 마치고 아직 해가 높을 때 집에

돌아가는 날은 라면을 먹어도 좋은 날이었다. 주 52시간 근무가 당연하듯 주 5일 학교 수업이 당연한 지금은 상상도 못 할, 그 시절엔 주 6일 근무가 모두에게 적용되던 때였다. 토요일이면 당연히 2,3교시 수업 후 CA활동 같은 걸 했던 것 같고, 당연히 엄마도 역시 출근. 중학생 때는 사진부여서 출사를 나가거나 암실에서 인화를 하거나 했던 것 같은데, 토요일이 즐거운 이유는 무엇보다 특식이 자연스러운 날이었기 때문으로 기억한다.

학교 후문을 나서서 횡단보도를 건너자 바로 우리 아파트 정문이었다. 럭키. 그래서 늘 간당간당 지각을 면했던 것도 사실. 재빠르게 계단을 다다다 내려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 내리면 복도식 아파트 우리 집 앞 그곳까지 아직 학교의 함성이 들리곤 했다. 그 시절 여중생 우리는 어쩜 그렇게 기운이 좋았을까. 도시 어부가 갯바위에서 잡아 올린 감생이 같다.

오늘은 진라면 순한 맛을 먹어야지. 늘 진라면 순한 맛과 안성탕면 사이에서 갈등했다. 가스불 조심. 메모 옆 밸브를 돌려 엉덩이를 쭉 빼고(무셔) 엄지와 검지에 온 힘을 집중해 불을 올린다. 물 두 컵, 수프 먼저 넣고 면 넣고. 보글보글. 아, 오늘도 조금 불었다. 먹다 보면 더 불을 텐데. 테레비를 켜고 여기저기 돌리다 결국 야구.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사인이다. 면은 뱃속에서 불어 몸을 점점 눕게 하고 야구 중계는 최면에 빠지게 했다. 늘 십분 안에 잠들게 하는 마력의 게임.

“주현아! 얘가 교복도 안 벗고 고대로 자고 있네.” 토요일은 라면을 먹어도 좋은 날, 그날의 승리팀을 모르는 날, 엄마가 일찍 퇴근하는 날. 그 시절 엄마는 어떻게 주 6일을 근무하고 주말을 또 애 둘 뒤치다꺼리를 하고 다시 또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우릴 깨웠을까. 우리 엄마는 신라면, 파 조금 넣어서를 좋아했다. 나도 이젠 신라면. 계란 하나 양파 많이 넣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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