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먹어서 망한 놈은 없다.

가끔 아빠는 철학자 같은 말을 해.

by 카타

아빠에게 가난은 긴 시간 해결되지 않은 문제였다.


아빠는 6.25 전쟁을 기억한다. 아픈 기억의 시작이다. 피난민의 설움을 겪으며 정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아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난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였다. 꿈 많던 10대의 청년은 대학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군대에 입대한다. 날개를 달지 못한 꿈은 거추장스러운 현실의 단면이다. 19살 청년의 기억은 아빠가 60이 되어서도, 70이 되어서도 여전히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린 일상, 학교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해 선생님께 혼이 나야 했던 가난의 기억은 아빠가 성장하여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난 이후에도 아빠의 마음에 각인되었다.


더 이상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전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된장찌개에 두부를 잔뜩 넣고 끓여 먹었으면 좋겠다."

그 흔한 된장찌개 한번 원 없이 못 드셔보시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아빠는 모든 물건을 아껴 쓰고 고쳐 쓰는 분이셨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만큼은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노력하셨다. 풍족하지만 넘치지 않도록.


가끔 아빠는 당신이 보기에 가난의 흔적처럼 느껴지는 것들에 신경 쓰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아빠는 고교입시 예비소집을 하던 학교로 나를 데리러 오셨다가 친구들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그다음 날 외투를 한 벌 사 오셨다. 전날 입은 외투 소매에 살짝 보풀이 일어나 있는 게 영 마음이 쓰이신 것이다. 하지만 그 외투는 당시 유행하던 떡볶이 단추가 달려 있어 내가 정말 좋아했던 옷이었다. 새 외투를 나에게 입혀보고 너무나 좋아하시던 아빠. 나는 그날 이후로 내가 정말 좋아하던 그 외투를 입지 않고 아빠가 사다 주신 새 외투를 입고 등교를 하게 되었다.


못 먹고 자란 설움이 컸던 아빠는 우리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 바로 사주셨다. 당장 먹을 수 없는 것들은 잊지 않고 기억해 두셨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는 아빠가 우리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인지도 모른다. 아빠는 못 먹었던 설움에 대한 지난 과거의 한풀이를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듯했다. 음식은 아빠의 한이고, 사랑이자, 유일한 사치였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무한반복 사다 나르시는 정성을 들이셨다. 달콤하면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사또밥이라는 과자부터, 한국요구르트에서 야심 차게 내놓았던 슈퍼백이라는 요구르트, 아침햇살이라는 음료수까지 우리는 아버지의 끊임없는 공수작전에 손사래를 쳐야만 했다. (시간이 되면 마트에 들러 오랜만에 추억의 친구들을 소환해 보아야겠다.)


우리 가족은 다른 사치를 하지 않으니 먹는 것만큼은 절대 돈 아끼지 말자는 아빠.


"많이 먹어서 망한 놈은 없어. 술도 술만 많이 먹어서는 망하지 않아. 술 먹고 딴짓을 해서 망하는 거야.

술 먹고 도박을 하거나, 여자를 만나거나, 엉뚱한 짓을 해서 망하는 거지."


아빠의 말은 농담인듯하면서 뭔가 묘하게 설득되는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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