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아빠의 시간들
소주 한 잔으로 위로가 되는 시간
"엄마가 부엌을 좋아했을 것 같지 않아."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참 좋아했다.
군더더기 없이 엄마의 인생을 표현해 주는 농도 깊은 문장.
나에게는 아빠와 아빠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다.
부엌살림이 추가되면서 아빠의 하루는 공백 없이 빽빽하게 채워졌다.
새벽에 일어나 딸들의 아침식사와 도시락을 챙겨 학교까지 바래다주고 일터로 돌아가는 일상.
퇴근 후 딸아이 숙제를 도와주거나 야식을 챙겨야 하는 일상.
가끔은 심심한 딸들의 친구 노릇도 해야 하는 일상.
평온한 듯한 '일상'이라는 표현은 무심하고 냉정하다.
바쁘다거나 힘들다거나 지친다거나 하는 등의 감정표현은 모두 소거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그 순간들이 참 재미있었다고, 너희는 참 '쉽게' 키워서 힘든 줄 몰랐다고
정말 '쉽게' 표현하셨지만, 우리는 그 시간 속 아빠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이다.
단지 그 시간들을 이해하기까지 어른으로 성장하는 더 긴 시간들이 필요했을 뿐이다.
언니와 나는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시간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 한다.
우리 아빠 참 대단하네. 고생 참 많이 했네. 힘들었겠네. 등등
아빠의 고단함을 주제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 아빠 참 외로웠겠네.로 마무리된다.
아빠는 정말 외로웠을 것이다.
아빠가 외로웠을 그 시간 동안 아빠는 때때로 술을 드셨다.
겉으로는 대장부 같아도 속 깊은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 아빠의 유일한 벗은 다름 아닌 '술'이었다.
아빠는 회식이나 모임에서 술을 많이 드시고 온 다음 날에도
도시락을 준비하고 학교까지 바래다주는 일상을 소홀히 하지 않는 분이었지만,
나는 술냄새와 취한 아빠의 모습이 싫어서 집에 있는 술을 감추거나 버리곤 했다.
우리를 위한 요리와는 다르게 당신의 술안주는 늘 변변치 않고 조촐했다.
우리는 항상 아빠에 대한 기억을 곱씹고 되새긴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수십 년을 함께 했어도 같은 경험을 다르게 기억하기도 한다.
참 다르게 생긴 우리지만, '아빠 같은 사람 없다.'며 한결같은 결론을 짓는다.
아빠를 향한 우리의 진한 진심이다.
언니와 내가 어른이 되고 직장을 갖은 후 우리 셋은 정말 좋은 술친구가 되었다.
아빠는 더 이상 변변치 않은 안주를 두고 소주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었다.
누구보다 가장 긴 시간을 함께한 우리 셋.
딸들 키워놓으니 정말 좋다!라고 하셨던 아빠.
"그러게, 가족을 포기하든, 일을 포기하든, 친구를 포기하든,
적당히 포기했으면 아빠 인생 편했을 텐데, 다 잘하려고 하니까 고달프지!
왜 사서 고생을 했어~"
아빠는 당신이 너무 완벽해서 그렇다며 머쓱한 표정을 지으신다.
나의 마음을 이해한 아빠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다.
오롯이 아빠 혼자만의 힘으로 지나온 시간.
고맙다, 고생했다, 미안하다...
어떠한 표현도 아빠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담아내기엔 참 작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