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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Nov 17. 2023

한솥 푸짐한 '죽'파티

 '꾸덕꾸덕한' 죽 삼총사


 "검진 마쳤다. 며칠 동안 죽만 먹으란다."


치과 방문을 마친 아버지가 보낸 문자가 도착했다. 임플란트를 위해 어금니 치조골을 어찌했다는 전문용어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죽만 먹으라는' 내용이 문자의 핵심이다. 나의 임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죽만 먹으란다'는 문장은 매직아이처럼 시선을 사로잡는다.


"물 좀 한 컵 줄래?"

"집에 밀가루 좀 있니?"

나는 아빠가 나에게 무언가 당당히 해달라고 요청할 때를 참 좋아했는데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어쩌면  <죽만 먹으란다> 라는 문장은 죽을 끓여달라는 완곡한 표현일 수 있지만 아빠는 그런 사소한 부탁조차 우리에게 해본 적 없는 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이 먹으면 너희들 귀찮게 안 하고 양로원에 갈 거다!>라는 말을 달고 사실 정도였으니 젊은 시절의 아빠도 꼬장꼬장하기로는 이루 말할 데 없었다. <아빠는 너희 보호자로서 역할을 못하면 사는 의미가 없다>는 고집의 표현이다.


그런 아빠는 매사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물 한 잔을 마셔도 반드시 설거지를 해놓는 아빠. 매일 손빨래한 속옷을 건조대에 널어놓던 아빠. 그러니 아빠는 살림거리를 늘리는 쪽이 아니라 스스로 살림을 하고도 일을 늘 덜어 놓는 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던 아버지도 하나둘씩 우리에게 요청할 거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지렁이 딸들이 성장하고 당신의 몸에서 세월이 느껴진 탓이다. 아빠의 요청은 기껏해야 물 한 잔 떠달라거나, 만두 좀 주문해 보라거나, 라면 좀 끓여달라거나 하는 정도의 시시콜콜한 수준의 것들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향으로 보았을 때 우리에게 당신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아주 조금은 내어준 표현으로 느껴져 그 점이 감사했다. 더 한 것이었다 해도 아버지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차고도 넘치는 분이었니까.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언니와 나는 한 방을 썼다. 만화책도 함께 읽고, 게임도 하고, 뒹굴뒹굴거리다가 출출하면 부모님 몰래 전기팬으로 핫케이크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새벽녘에 계획 없이 배가 고플 때면 아빠에게  무엇을 만들어 달라할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늘 새벽에 한두 번씩 집안 순찰을 도는 것이 하나의 임무였다. 문단속은 잘 되어있고 창문은 잘 닫혔나, 가스불은 잘 잠겨 있는지, 전기코드는 모두 뽑혀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몇 번의 순찰을 완료. 새벽녘에도 같은 순찰을 반복하셨다. 아버지의 강박적인 루틴이다. 우리들의 어린 날에는 바로 그때가 아빠에게 간식거리를 요청할 타이밍이었다. 언제나 순찰의 마무리는 두 딸이 방에서 잘 자고 있나 확인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버지가 문을 열고 두 딸의 안부를 확인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의 아버지가 우리의 방문을 열기를 기다린다.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아빠의 얼굴이 빼꼼히 우리 방에 들어오면, 밤 사이 뒹굴거리다 배가 고파진 자매는 철없이 간식을 요청한다.


"아빠! 우리 뭐 만들어 주면 안 돼?"


나의 아버지는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늘 떡국이든 만둣국이든 그 새벽녘에 최대한 빨리 만들 수 있는 메뉴를 정해 무언가를 만들어 주시곤 했다.






아빠가 자주 만들어 주었던 별식 중에는 '죽'도 있었다. 우리 집은 간식처럼 죽도 자주 끓여 먹었다. 아빠의 음식솜씨가 몹시 서툴렀을 때에도 아빠가 끓인 죽은 죽답지 않게 푸짐하고 맛있었다.


기억에 나는 '죽 삼총사'는 '땅콩죽' '잣죽' '전복죽'. 땅콩죽과 잣죽을 만들 때는 믹서기가 동원되었다. 나는 소음에 취약해서 믹서기를 소리를 아주 싫어했지만 맛있는 죽을 먹는 과정에선 참아야 하는 과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작은 쌀알이 더 작은 알갱이가 되어 죽으로 탄생되는 과정은 신기했다. 죽을 만드는 저녁, 아빠는 기다란 주걱으로 냄비를 계속 저어주었다. 땅콩과 잣을 아끼지 않은 죽이니 더없이 고소하고 맛있었다.


전복죽을 끓이는 과정은 더 복잡하다. 먼저 전복사냥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전복은 귀한 해산물이라 아버지는 도시로 나올 일이 있을 때 전복을 곱게 담아 올 가방을 손수 챙기셨다. 백화점이나 큰 수산물 시장에 갈 일이 있을 때 아빠는 늘 <전복 싱싱한 것 있어요?>라고 묻고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넉넉한 전복을 사냥해 오셨다. 역시나 배고팠던 시절에 대한 한풀이다. 그렇게 전복을 사 온 날에 아버지는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사람처럼 부엌에서 정성껏 전복을 다듬기 시작한다. 얼마큼은 회를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우리 입에 넣어주고, 몇 개의 전복을 찹찹 썰어 전복죽 끓이기에 돌입한다. 아빠의 전복죽엔 채소 없이 전복과 쌀, 김가루가 주된 재료로 들어간다. 수분이 적은 아주 꾸덕꾸덕한 죽이다. 큼직큼직하게 썰린 전복만 들어가니 그런 호사가 따로 없다. 그래서인지 전복보다 채소와 버섯이 주된 재료로 들어간, 수프처럼 수분이 많은 프랜차이즈 전복죽은 내 눈에 왠지 초라하다. 만족스럽지 않기에 죽 역시 사 먹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다. 아빠가 누리게 해 준 호사 덕분에 가성비와 가심비를 더욱 철저히 계산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아빠가 만들어 주었던 한솥 푸짐한 죽 덕분에 죽이라는 음식이 아플 때 먹는 음식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자라서야 알게 되었다. 나에게 죽은 하나의 요리 그 자체였다. 우리 집에서 끓인 죽은 물기가 많지 않아 리소토(이탈리아 쌀요리)에 훨씬 가까운 느낌이다. 실제로 아버지는 내가 리소토를 만들어 저녁식사로 내었을 때 <죽을 참 맛있게 끓였구나>하며 좋아하셨다. 하지만 죽을 만들 땐 리소토보다 쌀을 더 무르게 익힌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그렇게 아버지가 만든 '죽 삼총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죽이라는 메뉴에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가족들 모두 죽을 좋아하는터라 밥 한 공기 대신 죽으로 대체해도 무리가 없다. 처음엔 아버지처럼 쌀을 볶아 죽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쌀 대신 밥을 사용해서 만드니 아빠가 넣었던 정성은 다소 사라지고 '빠르고 간편한 휘뚜루마뚜루 죽'이 탄생한다. 채소죽, 소고기죽, 전복죽, 김치콩나물죽, 계란죽... 어떤 재료가 들어가든, 어떤 방법으로 끓였든, 아버지가 만든 죽처럼 수분기 적고 재료가 아낌없이 들어가는 꾸덕꾸덕한 죽이라는 점은 우리 집의 변하지 않는 전통이다.





어느 해 내가 끓인 전복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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