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검도 회고 by 해달
“지겹다 고마 힘겹다 고마 숨이 턱!
까지 찬다 고마
환장하겄네 어차피 도장에 와 버린 걸“
아침에 하천 산책로를 따라 뛰며 혼자서 가사를 고쳤다. 참 신기하다. 운동 종목은 달라도 들여다보면 왜 이렇게 비슷할까. 어제 밤에 글쓰기 모임 단톡방에서 잠깐 나눈 대화도 떠올랐다. 다들 하나, 둘, 허리 아프다고 한 것도 벌써 두어 달 전이다.
요새는 도장에 갔다 오기만 해도 잘했다고 애써 생각한다. 억지로라도 이렇게 생각해야 덜 힘들어서다.
올 여름부터 가을까지 네 달 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코어 근육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는 걸. 다행히도 요즘에는 호구를 쓰고도 허리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 뒤로 이제는 호구를 쓰면 또 다칠까 봐 신경 쓰인다. 불안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전과 달리 몸을 사리면서 소극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다른 이에게는 사소할 수도 있지만 허리 부상을 기점으로 한계도 느껴진다. 몸이 마음 같지 않다는 느낌은 거대한 벽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봐도 힘과 스피드, 운동 신경 내지는 재능 등 스포츠에서 높이 평가하는 어느 것 하나 타고난 게 없다. ‘친정’ 검도관(실제로 친정 옆 동네에 도장이 있고, 친정처럼 편안한 곳이라는 뜻이다.)에서 운동할 때도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관장님께 지적을 많이 받고 깨지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오기로 버틴 것 같기도 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제일 안 되는 거 하나만 팬다는 심정으로.
그때와 달리 아직도 한참 꼬꼬마여도 초단이 된 지 1년이 넘었으나 허리 때문에 2단 승단 심사를 2번 미룬 지금은 그럴 힘도 없고 의지도 좀 꺾였다. 그 와중에 이번주에는 사범님께서 희한하게 어려운 기술만 계속 연습 시키신다. 자세히 보니 ‘친정’ 검도관에서도 꼬꼬마 시절에 관장님께서 알려주셨던 동작이다. 상대의 죽도를 타고 들어가서 머리 또는 손목 치기. 상대의 검선을 따라 쑤욱, 타고 들어가는 것이 포인트로 발을 빨리 움직여서 내는 스피드와 힘이 중요하다.
머리로는 일단 접수. 문제는 몸으로까지 더럽게 접수하지 못한다는 것. 새로운 동작을 처음부터 빨리 해내지 못하는 스타일이나 다른 사람들보다 속도가 현저하게 느리다. (어떤 때는 같이 연습하는 애들에게도 혼자서 미안할 정도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동작이 더 꼬인다.) 천천히 하면 좀더 빨리 쳐 보라는 말이 돌아온다. 거기서 조금 더 속도를 내면 타격이 약하다는 말이 돌아온다. 한 번 더 치면 더 세게 치라는 말이 돌아온다. 더 세게 치면 도로 더 빨리 치라는 말이 돌아온다.
“…….”
‘아, 어쩌라고 도대체.’
“쏟아지는 땀 속에 호면이 쩔어도
할 수 없다 아이가
창피하게 멈출 순 없다 아이가“
어제도 호구를 쓰며 연습하면서 사범님께서 시범을 보이는 동안 죽도로 머리를 맞는데 유난히 아팠다. 쾅! 이렇게 아팠나? 이상하네. 연습이고 뭐고 3년 전, 관장님 앞에서 연격 후 죽도를 집어던졌던 못된 꼬꼬마가 튀어나올까 조마조마했다. 여자분인데도 ‘친정’ 검도관 관장님께 맞을 때보다 더 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갈수록 더 빡세게 시키시는 것 같다. 애들도 헤매는 걸 보며 상대의 검선을 타서 치는 저 동작이 ‘급’인 사람도 한 번에 하기 어려운 동작인데, 보면서 생각했다.
사범님께서는 답답하셨는지 중간에 시범을 다시 보이면서 더 빨리, 더 세게 치라고 하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아이들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다들 헤매고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쉬운 게 아니라니까…… 다들 각자 이유는 달라도 서로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고’단자이신 분하고 저희하고 같냐고요, 라는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했는지. 이 기분은 한창 일할 때도 느꼈단 게 떠올랐다. 애들도 나한테 대놓고 말은 못하고 저랬을까 싶었다. 저랬을 거야. 그랬을 거야. 죽도를 들고 발을 구를수록 지하 암반을 어디까지 뚫었는지 모르겠다.
“이유도 없이 가끔은 억!
수로 억울하겠제
일등 아닌 보통들에겐 칭찬조차 남의 일 아이가“
갑을 입고 갑상을 두르고 호면을 쓴 40여 분이 이렇게 길었나. 저건 발 빠른 애들이나 할 수 있는 거지, 저건 스피드 받쳐 주는 애들이나 하는 거지, 저건 운동 신경이 있으니까 금방 하는 거지…… 이유를 찾자면 끝도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어제는 그렇게 투덜투덜하고 싶었고, 속으로 내내 투덜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운동이 끝나고 오늘도 영 시원찮다고 생각하며 안경을 벗어 뵈는 것이 없는 눈으로 호구를 정리하고 있는데, 운동을 막 시작한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분께서 다가오셨다.
“저……”
‘?????’
“저 혹시 지금, 몇 단이세요?”
평소 같았으면 바로 대답했을텐데 순간 뭐지 싶었다. 타이밍도 참……
“아…… 초단이요.”
이럴 땐 물어본 것만 정확하게, 간단히 대답해야 한다.
“아, 그러면, 몇 년 하신 거에요?”
“어……”
이 도장에 와서부터는 초단이라고 하기도 창피한데 왜 나한테 물어보실까.
잠깐 고민하다가 1년을 깎았다.
“2년 좀 넘었어요.”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무리 봐도 벽이 있는 것 같아. ‘친정’ 검도관에서 같이 운동하신 분은 이번에 2단으로 승단하고 자극을 받으셨는지 곧바로 3단 승단 준비한다고 적극적으로 덤비시는데, 난 그동안 뺀질댄 적이 없는데도 왜 이러나 싶어 힘이 빠졌다. (2단에서 3단 승단심사를 보려면 최소 2년 있어야 한다.) 아, 정말 여기까지인 건가. 2단까지만 하고 잠시 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달리기에는 결승선이 있기라도 하지 검도는 개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나아지는 게 도통 보이질 않고 때론 도루묵이기까지 하다. 출첵 밖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운동하러 가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칭찬을 못 받아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우야면 좋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