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없었다, 그럼에도 신은 있었다

[서평] 얀 마텔, <파이 이야기>

by 검도하는 해달
출처: <Guardian>


결국 신은 없었다. 그럼에도 신은 있었다. 한 평론가가 말했듯 이 소설은 신을 믿어야 한다고 설득하지 않고도 어딘가에 신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신이 모든 곳에 자신을 보낼 수 없어 ‘엄마’를 대신 보냈다.”는 <응답하라 1988> 속 내레이션이 떠오르는 소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2001)이다.


내가 아는 세상 밖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내적 성장은 시작된다. 주인공 ‘파이’에게는 원주율 3.14와 종교가 그 대상이다. 무리수 원주율과 사원은 추상적 개념인 숫자와 종교를 각각 언어와 종교로 구체화한 것이다. 파이는 원주율로 선생님들과 자신의 이름을 놀림감으로 삼는 또래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새로 태어난다. 동시에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모두 믿으며 각자 자신의 교리가 옳다고 다투는 사제들 앞에서 “저는 단지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말한다. 신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 형태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견해로 관용 정신을 이미 깨닫고 있었던 그의 말은 모두를 숙연하게 한다.


파이의 다음 성장은 가족과 이별하면서 시작된다. 태평양에서 침춤 호가 침몰하면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파이는 바다에 적응하며 생존을 배운다. 그 모습은 실로 놀랍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파이가 만새기를 죽이는 과정을 묘사하는 장면은 이전 신념을 스스로 깨뜨린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파이가 처음으로 커다란 만새기를 죽일 때는 살생이 교리에 반한다며 죄책감에 거듭 망설인다. 하지만 두 번째로 만새기를 죽일 때는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덤덤하게 생선의 대가리를 내리친다. 또한 구명선에서 찾아낸 생존 지침서를 읽으며 바다에서 기도, 배 보수, 리처드 파커 돌보기 등 일과를 새로 만들어 꾸린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씩 집중하며 적응하고 하루를 살아낸다.


하지만 파이가 리처드 파커와 함께한 생존은 마지막에 허구임이 밝혀진다. 현실은 무미건조하고 잔혹했다. 요리사가 선원과 파이의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에 분노한 파이가 요리사를 죽이고 그 인육을 먹으며 하루, 하루를 버텼다. 두 번째 이야기를 다 마친 파이는 일본 조사관들에게 묻는다. “두 이야기 중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듭니까?” 조사관들은 침묵하다가 호랑이가 나오는 첫 번째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든다고 답한다.


소설 속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구명보트에서 처음에 살아 있었다던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뱅골 호랑이까지. 모든 건 파이가, 더 정확히 말하면 파이의 트라우마와 본능이 만들어낸 존재들이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태평양에서 침몰한 침춤 호에서 파이만이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파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여기서 톨스토이가 던진 질문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파이는 말했다. 자신이 태평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리처드 파커가 그 신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리수인 ‘원주율’이 이름인 소년도 살려면 그 숫자를 만든 세상과 거기에 머물다 간 인간의 흔적이 어딘가에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리처드 파커는 그 세상의 일부이다. 그런 믿음으로 파이는 망망대해에서 하루, 하루를 견딘 건 아니었을까. 동시에 리처드 파커는 파이가 만들어낸 환상이자 파이 자신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요리사에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며 파이는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깨고 생존을 위한 본능을 택했다.


현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가운에서도 파이에게는 신이 있었다. 그 신은 원주율과 사원, 뱅골 호랑이로 모습은 달랐지만 늘 그의 곁에 있었다. 현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잔혹하고 고통스러워 때로 신이 있냐고 파이는 물었다. 신은 늘 거기 있었다. 우리에게는 그 신이 누구이고,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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