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 차가운 열정)
* 1/14에 쓴 글을 퇴고했습니다.
검도관에 가지 않은 지 두 주가 넘었다. 첫 주는 새해를 앞두고 연말과 겨울 방학이 끼어서 쉬었고 그다음 주, 그러니까 지난주부터는 마음이 집을 나가서 쉬고 있다. 작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호구를 쓰고 운동하다가 엎어져서 양 무릎이 멍든 뒤다. 오래간만에 크게 넘어져서 아프기도 했지만, 그때 그동안 참고 참고 참고 또 참았던 뭔가가 결국 터지고 말았다. 아침을 먹으면서 내 얘기를 듣던 신랑이 말했다. “운동하면서 스트레스 받았구먼.”
마룻바닥에 엎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다시 해 보자고 다짐했었다. 못하면 어때, 예전에도 못했고 예전에도 신나게 혼났어, 나만 혼나는 거 아니고 나만 힘든 것도 아냐, 괜찮아. 개뿔, 여기서는 괜찮지 않았다. ‘친정’ 검도관에서 운동할 때는 그래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여기 와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라들었다. 거기다 그 애들만 있으면 항상 어딘가 작게든 크게든 다칠 뻔하거나 다쳐서 집에 왔다. 몇 번 운동 시간을 바꿔 보기도 했으나 워낙 고단자와 연장자 텃밭이라 군대에 가깝고 초단은 같이 운동하기도 힘든 분위기였다.
몸도 마음도 갈 곳이 없다. 지금 다니는 검도관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처음에 안내받은 시간대가 있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그 앞이나 뒤 시간대에 가서 그동안 운동했었다. 애들은 중학생인데도 덩치가 크고 시합 연습만 죽어라 했는지 싸움닭처럼 덤벼서 같이 연습하기가 쉽지만은 않았고, 그때도 오른쪽 어깨를 다칠 뻔했다. 애들보다 못하는 게 보이니 처음에는 대련, 나중에는 기본기에서마저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전에도 칭찬보다는 지적을 훨씬 더 많이 받고 혼났지만 그때는 기본기가 연습하면 느는 게 보였다. 그때는 ’되면 한다‘, ’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2년 전 이맘때 승단심사를 몇 달 앞두고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서 끙끙 앓다가 하루는 소심하게 투정을 부렸다.
“관장님, 저 검도에 소질 없나 봐요. 해도 안 늘어요.”
“원래 그래. 내가 그랬잖어. 검도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30년 넘게 한 나도 어려워.”
“…….”
“걱정하지 마. 하면 늘어.”
그때 했던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다. 뭐가 달라진 거지? 운동할 때마다 갑갑한데, 고칠 자세가 있단 걸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답답한데, 때론 억울하기도 한데 여기서는 털어놓기가 너무 어렵다. 상대의 검선을 타고 들어간 뒤 머리 치기를 연습할 때도 하면 할수록 의욕이 바닥을 향했다. 거의 바닥난 힘을 쥐어짜고 쥐어짜서 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게, 나 자신에게는 더 관대하게’라는 말이 그래서 낯설고 신선했다. 도장에 가는 대신 집 근처 하천에서 뛰고 집에서 스텝 박스 운동을 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집 나간 마음이 돌아오려는지 담벼락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다시 도망가는데, 아직까지는 멀리 달아나 있는 시간이 좀 더 길다. 그때가 그립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호구를 쓰고 뒈지도록 땀 흘리며 운동하고 겨울에는 차를 손에 쥐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언 몸을 녹이던 그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