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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리크 Oct 26. 2022

논산편 4부

논산훈련소 完

훈련소 5주 차


  그동안 훈련소에서 익힌 연습들을 총괄하는 각개전투가 개막했다. 일정이 빠듯해서 그런지 오전에 있는 점호도 도수체조만 간단히 하고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20kg 완전 군장을 하고 훈련 교정으로 향했다. 가던 도중 군화끈이 풀렸는데 묶을 수도 없고 계속해서 신발이 벌어지는 통에 가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발 때문에 신체적 균형이 깨졌는지 오른쪽 어깨가 너무 아팠다. 교정에 도착해서 작은 텐트 치기 연습을 했다. 우리 분대는 조금 빨리 마쳐서 30분 정도 쉴 수 있었다.


  반합을 이용해 야외에서 점심을 먹었다. 평소 식당에서는 수저와 젓가락을 통해 밥을 먹었는데 오늘은 포크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다. 포크 숟가락 앞에 있는 이빨 때문에 국을 먹기가 심히 불편했다. 점심 휴식을 취한뒤 포복 연습을 시작했다. 3시간 동안 흙바닥을 기어 다녔다. 사람들이 속된 표현으로 육군을 '땅개'라고 표현하는데 왜 그런지 이제야 깨달았다. 정신없이 구르고 나니 저녁이 되어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가는 동안 군장 끈이 4번씩이나 풀려 나중엔 그냥 한쪽만 매고 갔다.


  각개전투 훈련 2일차에는 은 엄폐와 포복을 섞어 일정한 구간을 돌파하는 연습을 했다. 진흙 때문에 군복은 금세 진흙범벅이 되었았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3번 정도 왔다 갔다 하니 온몸에선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점심을 먹은 다음에 다른 교정으로 향했다. 장애물 극복 연습을 했다. 여러 가지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숨는 연습을 했다. 나무뿌리가 계속 무릎에 걸려서 다리 곳곳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힘들긴 했으나 어제의 포복 훈련보단 시간이 잘 지나가서 좋았다.


  마지막 각개전투 훈련날이 되었다. 탄알집 교체를 하는게 오늘 오전 일정이었다. 모든 훈련소의 연습이 그렇듯 앞에 나온 조교가 보이는 시범은 굉장히 쉬워 보였지만 막상 내가 해보면 엄청나게 어려웠다. 생각보다 탄알집을 떨어지게 해주는 버튼이 잘 눌리질 않았다. 훈련병 중에서 가장 교체를 잘하는 인원이 4 소대장과 탄알집 교체 배틀을 붙었다. 5판 3선 승제로 이뤄졌는데 막상막하로 가다가 결국 훈련병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점심을 먹고 종합 각개전투 훈련장으로 향했다.


  종합각개전투장으로 가는 동안 사육장에 갇혀 있는 젖소들을 만났다. 젖소들한테 인사를 하며 훈련장으로 올라갔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앞에 간 인원들을 기다리는 동안 손끝과 발끝이 너무 시렸다. 총과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종합각개전투 훈련장에 가까워졌음을 짐작했다. 이번 주 3일 동안 배운 각개전투 훈련들을 전부 활용하는 종합 각개전투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장은 산비탈에 훈련소에서 연습했던 모든 훈련들이 적용되어 있었다. 은엄폐, 수신호 활용, 포복, 수류탄 투척을 했다. 훈련장에서는 폭탄 소리와 총소리가 음향으로 제공되었는데 진짜 전쟁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 실전과 게임은 정말 다르구나를 느끼며 가운데 있는 우리 소대 훈련병의 수신호를 보며 계속해서 위로 전진했다. 포복을 할 때 탄띠가 풀리지 않게 신경 써야 하고 총에는 또 흙이 안 들어가게 해야 하고 정신이 없었다. 3번 왕복 후에 생활관으로 복귀하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훈련소의 꽃인 행군이 시작 되었다. 체력 안배를 위해 아침 점호는 생략하고 식사 후 대대 현관 앞으로 갔다. 이번 각개전투 훈련 기간 동안 군장이 하도 풀려서 분대장한테 끈좀 잘 조여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드렸다. 행군은 영내에서 중대장이 정해둔 코스를 따라서 걸었다. 동계기간에 입소한 경우 일반적으로 영내에서 20km 행군을 한다고 알려줬다. 충성교장을 2회 왕복하고 부대를 크게 2바퀴 돌고 나서 점심을 먹었다.

  행군을 진행하며 그 동안 돌아다녔던 부대 내의 모든 시설들을 볼 수 있었다. 예전에 가봤던 곳은 눈에 익어서 그런지 익숙함이 느껴졌다. 영점사격을 하던 날, 연습용 수류탄을 던진 날 등 다양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한겨울인데 기온이 높아서 봄처럼 따뜻했다. 오후 시간에는 땀에 절은 채로 걸어 다녔다. 중간에 이탈을 하는 인원들도 있었지만 우리 분대 인원들은 전원 낙오 없이 생활관으로 모였다. 생활관으로 복귀를 하니 훈련소 소대장, 중대장이 박수를 쳐주며 맞이해줬다.

  어제의 여파 때문인지 몸에 피로도가 엄청났다. 아침점호를 마치고 돌아와서 세탁기를 돌리고 어제 사용한 장구류들을 정리했다. 하루 종일 청소만 했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또 청소를 했다. 세척한 장구류들을 대대 측면에 빨래 널듯이 펼쳐서 말렸다. 어제와 달리 날이 너무 추워서 장구류들을 손빨래하는 동안 손이 아렸다. 중대장이 고생했다며 PX 갈 시간을 줘서 분대 인원들과 PX를 다녀왔다. 훈련소에서 받아야 할 모든 훈련을 마쳐서 그런지 무한 대기만 했다. 옆 중대는 족구를 했는데 카투사 인원들은 다치면 유급되니까 절대적으로 훈련 이외의 운동은 금지시킨다고 들었다.

  새벽에 불침번을 서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다. 설날을 맞이했다며 생활복이 아닌 전투복으로 환복 하란 방송이 떨어졌다. 합동차례를 치러야 한다며 평소면 금방 먹는 아침을 1시간을 넘게 기다리고 나서야 먹을 수 있었다. 5분 동안 절 2번을 하기 위해서 이런 비효율적인 짓을 해야 한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식사를 마치고 생활관 관물대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이제 활동은 없고 계속 먹기만 하니 죽을 것 같다. 다시 훈련소 1주 차가 생각난다. 아직 훈련소에서 약 10일간을 더 보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아침 점호때 다음 주에 있을 수료식 제식 연습을 했다. 이후 종교활동을 하러 갔다. 이번 주는 설날이 있어서 새로 입소한 훈련병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종교활동 이후 점심을 먹고 증식인 쌀국수를 먹었다. 베트남 쌀국수와 같은 맛이 날까 기대를 했지만 전혀 다른 맛이었다. 예상과는 달랐지만 맛 자체는 좋았다. 사람들의 후기처럼 뜨거운 물에 푹 익혀 먹어서 그런 것 같다. 생활관으로 복귀하여 또 장구류들을 정리했다. 매일 치워도 맨날 먼지가 쌓여서 무엇이 원인일까 싶었다.

훈련소 6주 차

  고대하고 고대하던 수료식이 내일로 성큼 다가왔다. 첫입소날 아침에는 막막해 보였는데 역시 받아놓은 시간은 다가왔다. 우천 시로 강당에 모여 소대장님한테 잔소리를 들었다. 이후 점심을 먹고 생활관으로 돌아와 분대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조만간 분대원들과 이별이 가까워졌기에 되도록이면 분대원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 내일 있을 수료식 예행연습을 한다며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판초우의를 지참했다. 연습을 마치고 생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수료식 당일이 되었다. 부푼 마음을 안고 기상을 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듣기 싫었던 기상 나팔 소리가 좋게 들렸다. 덕분에 개운하게 일어났다. 아침 식사는 대충 먹었다. 수료식 이후 부모님과 많이 먹기 위해서 그랬다. 식당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인원들도 평소와 달리 대충 밥을 챙겨 먹었다. 중대장도 이를 의식했는지 평소보다 밥을 적게 한다고 부모님이 못 오시는 인원들을 따로 점검했다. 식사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와 복장을 갖추고 그동안 부모님을 드리기 위해 모아둔 달팽이 크림 10개도 방상외피에 구겨 넣었다.


  0950분에 입영심사대로 도착하여 1시간 동안 제식 연습을 했다. 키라도 큰 덕분에 우리 대열에서 앞쪽에 위치할 수 있었다. 수료식 일정이 다가올수록 입영 심사대의 구령대에는 부모님들로 점점 채워지기 시작했다. 제식에서 실수를 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지만 막상 수료식 때는 실수하지 않고 무사히 마쳤다. 행사가 끝나니 바로 가족들이 내게로 왔다. 아버지가 달려와서 눈물이 났다. 울지 않으려고 훈련 때도 예행연습 때도 늘 생각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고 나니 참기 어려웠다. 어머니가 내 방상외피에 태극기와 이등병 계급장을 붙여주셨다. 

  부모님이 미리 예약해두신 펜션으로 향했다. 가는길에 맘스터치에 들러 싸이 버거를 구매했다. 이게 제일 먹고 싶었다. 펜션에 도착해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치킨과 한우를 먹었다. 그리고 딸기를 먹으면서 누웠다. 가족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하고 친구들한테도 카톡과 전화를 했다. 6주 만에 부모님을 봬서 그런지 시간이 쑥 지나갔다. 부대로 복귀하기 전에 샤워를 하고 다시 훈련소로 향했다. 대략 5~6시간 정도의 외출이라 넉넉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가족들과 작별을 고하고 다시 훈련소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점호를 마치고  교육대장의 교육이 충무강당에서 진행되었다. 비 카투사 인원인 4소대 인원들은 제외되었다. 이미 다 들었던 얘기라서 그런지 나를 포함한 많은 인원들이 강당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후 중대장이 강당에서 전달사항이 있다며 집합을 했다. 훈련기간 동안 모범이 될만한 병사를 표창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우리 분대원 중 한 명이 9중대 체력장 1등을 했다. 난 아무런 상을 타지 못해서 아쉬웠다. 여차저차 훈련소에서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내일이면 6주간의 논산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카투사 훈련소로 배출되어 3주간의 추가 훈련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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