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며 일하기
"실수한 적도 있었고, 고음 파트에서 삐끗한 적도 있었고. 근데 그게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나 때문에 무대가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그때 나에게 돌아간다면 '괜찮아 태연아, 다음 무대 때 또 기회가 있어. 더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121회 소녀시대 편 태연
'다시 데뷔 시절로 돌아간다면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란 질문에 소녀시대의 태연은 데뷔 시절의 자신을 향해 이렇게 담담하면서도 다정하게 말했다. 그 말이 묘하게, 그날의 나에게도 닿았다. '괜찮아, 다음 기회가 있어. 더 잘할 수 있어.' 마치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는 위로처럼, 다정한 속삭임처럼 들렸다. 왈칵 쏟아질 뻔한 눈물을 꿀꺽 삼켰다. 아마도 당시 나에게도 필요했던 말이었기에, 더 깊이 와 닿았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다정의 힘은, 세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네.' 홀로서기 초반, 거의 매일 입에 달고 살던 말이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뭔가를 하다보면 끼니도 대충 때우기 일쑤였고, 눈 깜빡할 새 하루가 저물어 있었다. 해야 할 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몸은 하나뿐이라 늘 시간은 부족하고, 마음만큼 일이 진척되지 않아 답답했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길이었기에 불평하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제자리걸음 같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어떨 땐 결과물도 내 맘 같지 않아 속상한 날도 있었다.
특히 책을 만들 때는 더더욱 그렇다. 기획부터 집필, 편집, 기다인까지 의견이 필요한 일이 정말 많다. 표지, 제목, 내부 구성 등등 까지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리더로서의 책임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지휘하고, 결정하고, 중심을 잡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책을 만들고, 출간에 기뻐할 즈음엔 이미 모든 에너지가 바닥나 있었다.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진이 다 빠졌다.'는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마치 오늘의 최선을 위해 내일의 에너지까지 모조리 당겨 쓴 기분. 중간에 지치지 않게 완급조절을 했어야 했지만, 늘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해 움직였던 탓이다.
강의가 있을 때면 주제에 맞춰 자료를 준비한다. 당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한다. 더 나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고, 매번 조금씩 보완하며 새롭게 다듬는다. 그럼에도 강의가 끝나면 늘 마음 한구석에 '더 잘할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럴 때면 '아직 내공이 부족한 걸까?' 하고 스스로를 책망하거나 '왜 이것밖에 못한 거니.'하며 몰아세우기도 한다.
실수하지 말자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은 야곰야곰 나를 갉아먹었다. 누구보다도 나를 아끼고 다독여야 할 내가, 오히려 스스로를 질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무너뜨려도, 결국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도 나였다. 그래서 조금씩 마음속에서 다정한 말을 꺼내 본다.
"이 정도면 충분해."
"괜찮아, 별일 아니야."
"아쉬우면 다음번에 더 잘하면 되지."
"다음이 있을까? 없대도 만들면 되잖아."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이 서서히 부정적인 마음을 밀어낸다. 한 치의 오차 없는 완벽함보다는 정성을 다한 진심의 힘을 믿기로 한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라는 걸 가끔 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뛰다가도 걷고, 지치면 잠시 멈췄다가 적당히 외부의 에너지를 빌려가면서 완급 조절을 해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신기하게도 '다음'은 꼭 오더라.
가끔은 넘어진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엉엉 울고 싶은 날도 있다. 그럴 때면 툭툭 먼지를 털고 일어난다. '괜찮아, 별일 아니야.' 스스로 그렇게 말해준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기대만큼 해내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그 모든 순간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가고 있을 테니까.
오래 전부터 소복소복, 내가 언젠가 꺼내 쓸 수 있도록 겹겹의 이불을 덮고 얌전히 그 자리에서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 책 『콘텐츠로도 먹고삽니다』 중에서
*본 브런치 스토리는 책 『콘텐츠로도 먹고삽니다』(생활모험가 저/ 소로소로)의 내용을 바탕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