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무한한 설렘과 두려움. 그 앞에서
누구의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새하얀 눈길 앞에 선다는 것. 어린 시절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일이었다. 뽀드득뽀드득, 새벽 눈 위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기분이 좋아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 일찍 일어나던 기억. 그때는 그것이 그저 낭만이었고, 마치 나만의 세상을 처음으로 열어보는 듯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마주한 눈길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누구의 발자국도 없다는 건 곧 따라갈 길이 없다는 뜻이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고요한 흰 풍경 속에서 나는 혼자, 방향도 확신도 없이 선 채로 묵묵히 걸음을 떼야만 한다. 함께 달리는 이가 있다면 앞서거나 뒤서거나 서로의 속도를 참고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이 길엔 아무도 없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도 모르겠고, 맞게 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내 속도대로, 내 호흡대로,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걸어갈 뿐이다.
어떤 날은 이런 생각이 문득 고개를 든다.
이 길이 맞긴 한 걸까?
다른 사람들은 넓고 환한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나만 이 외진 길을 고집하는 건 아닐까?
외로움보다 더 두려운 건 그런 의심이었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던 건, 그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꽤 먼 곳까지 와 있었다. 내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걷고 있었던 것이다.
외롭다고만 생각했다면 이만큼 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시선이나 박수를 바라지 않고도 한 걸음씩 나아간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나는 또다시 새하얀 눈 위에 선다.
몇 번이고 마음이 새하얘지는 순간들을 지나왔다. 불안과 두려움, 설렘이 동시에 몰려오는 그 묘한 시간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주문처럼 속삭인다.
잘할 수 있어. 해봤으니까, 또 할 수 있어.
오늘도 숨을 깊게 들이쉬고, 조심스레 첫 발을 내딛는다. 저벅저벅, 누군가의 발자국은 없지만 내가 걷는 이 길이 곧 길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책 『콘텐츠로도 먹고삽니다』 중에서
*본 브런치 스토리는 책 『콘텐츠로도 먹고삽니다』(생활모험가 저/ 소로소로)의 내용을 바탕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