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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은, 힘이 세다

by 생활모험가

사진을 찍을 때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 눈에 띄는 게 싫어서 무채색 옷을 즐겨 입었다. 어릴 때부터 앞에 나가 발표를 해야 할 때면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몰랐고, 주목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 할 때면 말이 청산유수처럼 술술술 흘러 나왔다. 좋아하는 책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연예인 등 나의 관심사를 이야기 할 때가 그랬다.

학창시절,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빅 이벤트가 있을 때면 스포츠 신문의 헤드라인을 오려 교실 뒤편 게시판에 붙여두고, 기사의 중요한 부분은 형광펜으로 칠해 누구나 스윽 지나가면서도 바로 요점만 파악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이렇게 하니 경기 결과나 일정 등이 궁금한 친구들도 쉽게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리 기사를 읽고 형광펜으로 중요한 부분을 표시해둔 정성이 대단하다 싶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이렇게 번거로움도 마다 않고 신나게 몰두할 수 있었다.


게시판을 통해 많은 아이들과 소식을 나눌 때면 뿌듯함도 느껴지곤 했다. 휴대폰도 거의 없고, 인터넷도 요즘만큼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아날로그 시절의 기억이다. 이렇게 얘기하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경계에서 성장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공감할 터.

이렇듯 평소에는 부끄럼 많던 내가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하는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무척이나 용감하고 씩씩해지는 것이다. 부끄럼 많고 숫기 없던 그 시절의 소녀가 강단에 설 수 있었던 건, 바로 '좋아하는 마음'의 덕이 팔 할이리라.

내가 애정을 갖고 만든 책들과 캠핑을 이야기 할 때면 나도 모르던 적극적인 내가 불쑥불쑥 튀어 나왔다. 캠핑으로 달라진 나의 삶과 캠핑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을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었다. 오랜 시간 캠핑을 하며 켜켜이 쌓아 온 경험치와 마음은 나눌수록 커져만 갔다.


캠핑을 이야기 할 때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 할 때면, 나는 세헤라자드가 되어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나간다.


- 책 『콘텐츠로도 먹고삽니다』 중에서




*본 브런치 스토리는 책 『콘텐츠로도 먹고삽니다』(생활모험가 저/ 소로소로)의 내용을 바탕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콘텐츠로도 먹고삽니다』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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