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교토의 기록2
필름 사진을 찍고부터는 내가 찍은 사진을 기억하게 됐다.
아니, 내가 찍은 장면을 기억하게 됐다, 라고 하는게 적확한 표현일테다.
예전에는 되도록 많은 풍경과 장면들을 내 눈보다도, 내 마음보다도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더 많이 보았고, 그렇게 몇백장, 많으면 몇천장의 사진을 찍어놓고도 다시 들여다보지도 않기 일쑤였다.
그렇게 수천번의 셔터를 누른 보람도 없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추억들은 내게 머무를 틈도 없이 아쉽게 스러져 갔다.
그걸 깨달은 이후부터였을까.
필름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하고, 조금은 느리지만 불편한 그 움직임이 정겹게 느껴졌다.
한 장을 건지기 위해 몇백장을 희생하기보다는,내가 한컷 한컷 더 신중하게 찍어보기로 했다.
그러고나니 자연스레 셔터를 누르는 움직임은 줄어들었고, 소모되는 디지털 사진의 양도 많이 줄었다.
100%는 아닐지라도, 거의 모든 컷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좋은 컷은 필름에 꼭꼭 눌러 담아 가져옴은 물론이고-
이번 교토는 내내 흐렸던 날씨 탓인지, 모든 사진이 희뿌연 느낌이다.
아쉽기도 했지만, 이러한 예민함 또한 필름이기에 가능한 일.
(반대로 화창한 날은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줄 터)
맑은 날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긴 흐린 날의 교토.
티켓을 끊고, 일정을 준비하는 때부터 시작되는 여행의 순간에 좀 더 머무르고 싶다면
앞으로는 필름카메라를 하나씩 가져가보자.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필름이 현상되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 그때까지 여행의 설렘이 이어질테니.
* 글 : 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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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빅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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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소로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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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포토그래퍼인 빅초이와 <시작은 브롬톤>을 쓴 작가 블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 모험가 부부입니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남편 빅초이가 찍고, 부인 블리가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