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겨울을 필름에 담다
내 눈보다도 더 많은 순간을 카메라에 담곤 했던 첫 여행의 추억.
꺼내보기도 버거운 몇천장의 사진을 찍기보다 내 눈에 꼬옥 꼬옥 눌러담고,
머무르고 싶은 순간만을 카메라에 담아오곤 한다.
아마도 그 변화의 시작은 필름카메라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조금 불편하고 느리지만, 참 따뜻한 필름의 온도.
이번 홋카이도 여행에 함께 한 필름카메라, 콘탁스t3.
자동으로 초점을 맞춰주는 영리한 이 친구 덕분에 나는 그저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포착하여
찰칵.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특히나 눈의 도시 오타루와 콘탁스t3는 제법 잘 어울렸다.
흰 눈이 온 도시의 색을 하얗게 하얗게 덮어버리던 순간도,
얌전한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내려오던 순간도.
나는 그저 주머니 속에 있는 콘탁스를 꺼내 찰칵, 그 순간을 담아낸 후 쏘옥 다시 주머니 속으로 넣곤 했다.
겨울이면 어디에서든 펑펑 눈이 내리곤 하는 이곳은 넘어질까 종종걸음을 걸어야 하는 어른들에게는 조금 답답할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공간이다.
여기저기 수북한 눈더미 덕에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앞이 썰매장, 스케이트장이 되어주니까.
아이들의 시선에선 눈으로 가득한 도시 전체가 하나의 놀이터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삿포로의 어느 골목에서 만난 아이들도 그러했다.
남매인듯 보이는 어린 아이들 둘이 제 키만큼 쌓인 눈더미에서 꺄르르 놀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나다가 자꾸만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게 됐다. 머무르고 싶었던 그 순간.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몰래 찍는 건 아닌 것 같아, 정중하게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너무 예뻐서 그런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
그러자,
‘저는 세 살이에요. 오빠는 여섯 살이고요.’
라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종알종알 들려주던 여자아이.
고맙게도 카메라 앞에서 야무지게 포즈도 잡아주던 산사이쨩.
(산사이=일본어로 '세 살'을 뜻하는 단어. '산.사.이' 라고 자신의 나이를 또릿하게 얘기해주던 아이가 귀여워 내맘대로 붙인 애칭이다)
어린시절 나와 오빠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어 사진을 찍다가 슬며시 웃고 말았다.
머무르고 싶었던 홋카이도의 소소한 순간들,
겨울이 그리워질때면 야곰야곰 꺼내먹어야겠다.
* 글: 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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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빅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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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포토그래퍼인 빅초이와 <시작은 브롬톤>을 쓴 작가 블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 모험가 부부입니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남편 빅초이가 찍고, 부인 블리가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