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홋카이도

겨울의 겨울을 필름에 담다

by 생활모험가

내 눈보다도 더 많은 순간을 카메라에 담곤 했던 첫 여행의 추억.

꺼내보기도 버거운 몇천장의 사진을 찍기보다 내 눈에 꼬옥 꼬옥 눌러담고,
머무르고 싶은 순간만을 카메라에 담아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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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 변화의 시작은 필름카메라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조금 불편하고 느리지만, 참 따뜻한 필름의 온도.



P1180575.JPG 필름카메라 콘탁스t3와 헤스트라 장갑


이번 홋카이도 여행에 함께 한 필름카메라, 콘탁스t3.
자동으로 초점을 맞춰주는 영리한 이 친구 덕분에 나는 그저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포착하여
찰칵.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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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눈의 도시 오타루와 콘탁스t3는 제법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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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이 온 도시의 색을 하얗게 하얗게 덮어버리던 순간도,
얌전한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내려오던 순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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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주머니 속에 있는 콘탁스를 꺼내 찰칵, 그 순간을 담아낸 후 쏘옥 다시 주머니 속으로 넣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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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어디에서든 펑펑 눈이 내리곤 하는 이곳은 넘어질까 종종걸음을 걸어야 하는 어른들에게는 조금 답답할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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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수북한 눈더미 덕에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앞이 썰매장, 스케이트장이 되어주니까.
아이들의 시선에선 눈으로 가득한 도시 전체가 하나의 놀이터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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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의 어느 골목에서 만난 아이들도 그러했다.

남매인듯 보이는 어린 아이들 둘이 제 키만큼 쌓인 눈더미에서 꺄르르 놀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나다가 자꾸만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게 됐다. 머무르고 싶었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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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아이들이라도 몰래 찍는 건 아닌 것 같아, 정중하게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너무 예뻐서 그런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

그러자,


‘저는 세 살이에요. 오빠는 여섯 살이고요.’


라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종알종알 들려주던 여자아이.
고맙게도 카메라 앞에서 야무지게 포즈도 잡아주던 산사이쨩.
(산사이=일본어로 '세 살'을 뜻하는 단어. '산.사.이' 라고 자신의 나이를 또릿하게 얘기해주던 아이가 귀여워 내맘대로 붙인 애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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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나와 오빠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어 사진을 찍다가 슬며시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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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고 싶었던 홋카이도의 소소한 순간들,
겨울이 그리워질때면 야곰야곰 꺼내먹어야겠다.









* 글: 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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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빅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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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소로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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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포토그래퍼인 빅초이와 <시작은 브롬톤>을 쓴 작가 블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 모험가 부부입니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남편 빅초이가 찍고, 부인 블리가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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