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으로, 타박타박
그럴 때가 있다.
어떤 식으로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을 때.
매순간 바쁘게 지내지만 어느 하나 손에 잡히는 것 없고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것은 어느새 모래알처럼 사르르 빠져나가고 없는 느낌.
멈출 수 없는 감정의 화살이 나 자신에게로 향할 때,
그 순간만은 어디론가 숨어서 혼자 엉엉 울고만 싶어진다.
어렸을 땐 그렇게 쉽게 울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어른이 된 지금은 엉엉 소리내어 울기보다는
아무 생각없이 타박타박 걷곤 한다.
그럴 땐 편한 길보다는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산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다른 계절보다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서 걸어야 하는 겨울산이 가장 좋다.
머릿 속까지 쨍하게 차오르는 차가운 공기, 도시에서의 겨울보다 좀 더 혹독한 자연의 기후가 실감난다. 날이 조금 풀렸다곤 해도 역시 겨울은 겨울.
하지만 가파른 오르막 때문인지, 잔뜩 껴입은 옷은 이내 뜨거운 열기로 차오른다.
심지어 등줄기엔 땀이 흐르고, 털모자를 꾹 눌러쓴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맿히기 시작한다.
한 줄로 나란히 나란히 걸어 올라가는 길, 나보다 빨리 가려는 이들에겐 길을 비켜주고 나만의 속도대로 타박타박 길을 오른다.
힘들면 조금 쉬어가도 좋은,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 나만의 속도로 걷는 산행은 늘 가뿐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정직한 움직임이 가득한 산에서는 금세 허기가 지곤 한다.
집에선 잘 먹지도 않던 삶은 달걀이 이곳에선 달디 달고,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커피는 나의 손 끝,발 끝까지 따스함을 전해준다.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어린아이처럼 양 볼이 발그레해진다.
옆 자리에 계시던 산악회 아주머니가 건네주신 작은 초콜렛 하나를 입에 넣으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아, 행복 참 별 거 아니네.
위에서 내려다보니 참 별 거 아닌 것들.
난 참 별 거 아닌 것들에 연연하고 있었구나,
산에 오르니 산처럼 마음이 깊고 넓어진다.
여기에 다 두고 가기로 한다. 나의 고민들, 침잠된 감정들, 모두..
이상하게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매번 더 빠르고 금방이다.
내리막의 가뿐함은 아마도 산에 두고 온 고민의 무게가 덜어졌기 때문일지도.
조금 더 행복해지는 방법, 겨울산에 있었다.
*글: 블리
www.instagram.com/bliee_
*사진: 빅초이
www.instagram.com/big.bigchoi
*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소로소로
www.soro-soro.com
라이프스타일 포토그래퍼인 빅초이와 <시작은 브롬톤>을 쓴 작가 블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 모험가 부부입니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남편 빅초이가 찍고, 부인 블리가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