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미니벨로

나의 오래된 친구, 브롬톤

by 생활모험가


얼마 전 브롬톤 정비를 위해 자전거샵에 들렀다가 우연히 브롬톤이 입고되는 순간과 마주쳤다.

상자에 포옥 감싸진 브롬톤들은 차곡차곡 창고에 쌓여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몇 대의 브롬톤은 진열을 위해 상자에서 꺼낸다고 했다.

중고 브롬톤을 산 나는, 늘 그 순간이 부러웠다.

작은 상자에 담겨 내게 배달되어 온 브롬톤을 정성스레 맞이하며 상자를 뜯는 첫 순간의 설렘이.

‘저어…….’

‘네?’

‘혹시, 그 박스, 제가 뜯어봐도 될까요?’


브롬톤이 담긴 박스를 꼭 내 손으로 뜯어보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한 번쯤은 새 브롬톤에게 첫 인사를 건네는

의식을 치러 보고 싶었다.

자전거샵 직원이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직원은 이상하지만 어렵지 않은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나에게 자리를 내 준다. 그의 호의에 나는 조심스레 브롬톤 상자를 열어 보았다.

박스 안의 브롬톤은 정말이지 작고 아름답게 접혀 상자에 담긴 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런던에서부터 여기까지 몸을 접고 날아온 브롬톤이 기특하고, 또 반가웠다.



브롬톤이 작게 접히는 덕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던가.
이렇게 작게 접혀 어디든 갈 수 있기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추억을 함께 만들며
교감할 수 있었던가.

이제 더 이상 새 브롬톤만큼 반짝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아름답게 접히고 지난 추억들에 한 겹 한 겹 뜨거운

우정을 더해 가는 내 브롬톤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완전 폴딩하면 작게 접히는 몸집 덕에 자가용, 버스나 기차, KTX는 물론이며 비행기까지 탑승이 가능한

브롬톤은 내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자랑한다.

때로는 내가 오기를 얌전히 기다리며 접혀 있다가 내가 펼쳐주면 그제야 반갑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같기도 하고, 여행길에선 지친 나를 이끌어주는 동행자 같기도 한 브롬톤.


그래서인지 브롬톤을 만난 이후로는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늘 함께 여행을 즐기고 있다.

시작은 ‘여행갈 때 브롬톤을 가져가볼까?’ 였지만, 이젠 ‘브롬톤을 탈 수 있는 곳으로,

브롬톤을 타기 위해’ 떠나게 된 셈. 언젠가부터 브롬톤은 내 여행길에 자연스레 동행하며 트래블 메이트가

되어 주고 있다.


여행길에서도 일상을 잊지 않게, 일상에서도 여행의 순간을 잊지 않게, 두 세계를 이어주는 브롬톤이라는
사랑스러운 연결고리 덕분에 오늘도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즐기고 있다.



알고 있다, 이제 세상에는 브롬톤 말고도 수많은 폴딩 미니벨로들이 기교를 부리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다닌다는 것을. 어쩌면 브롬톤은 더 이상 세상에서 가장 작게 접히는 미니벨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브롬톤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형태로
몸을 접고 펴며 자기 몸 위에 올라타는
동지와 어떤 순간이라도 함께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자전거라는 것을.


친구가 되는 법을 아는 금속의 탈것이라니, 이만큼 매력 넘치는 존재가 또 있을까.



내 오래된 벗, 브롬톤을 오늘 다시 생각해 본다.




글 : 블리
www.instagram.com/bliee_
사진 : 빅초이
www.instagram.com/big.b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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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포토그래퍼인 빅초이와 <시작은 브롬톤>을 쓴 작가 블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 모험가 부부입니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남편 빅초이가 찍고, 부인 블리가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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