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이모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
돌다리도 세 번 네 번 두드리고 건너는 편입니다. 훗날의 후회는 오로지 내 몫이니 애초에 최선의 선택을 하자는 주의지요. 이런 삶의 태도가 싫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지엽적인가 싶어 걱정이긴 합니다. 우산 하나를 살 때도 굽이치는 각종 옵션의 너울 속에서 한 시간씩 고민하던 예전의 제가 기억나거든요. 최근에는 도시락을 사러 갔다가 용량, 환경호르몬, 색상, 가격을 따져보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사고 집에 돌아와서 ‘아 충동구매 안 해서 다행이다’ 하며 안도한 것을 보면, 저는 앞으로도 돌다리를 수없이 두드리며 살 팔자인가 봅니다.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후기를 찾아봅니다. 네이버 검색 창에 “페스티벌 3단 도시락 환경호르몬 내돈내산 솔직 후기”라고 입력해 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실용적이어서 때로는 감격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귀한 정보를 아무 대가 없이 내어주는 이들은 박애주의자임이 틀림없습니다. 우산이나 도시락뿐이겠어요? 진로와 주거, 나아가 불가피한 인간의 생로병사, 희로애락, 길흉화복의 모든 루트 위에서 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자주 귀를 갖다 댑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로 상담가인 작가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프로의 듣기는 상상 이상으로 수고로운 고차원적 행위일 테지만, 어떤 식으로든 내게로 입력된 인풋들은 다시 의미 있는 아웃풋을 만들어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즐겨 듣습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는 우리 외할머니의 시집오기 전 이야기를 좋아하고, ‘갈등’이 칡나무와 등나무의 줄기에서 유래됐다는 아빠의 설명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그 사람이 좋은 이유를 자분자분 털어놓는 여동생의 잠재적 러브 스토리가 좋습니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 레드필이 소중한 이유,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이토록 즐거운 이유는 그렇게 하나의 지점으로 귀결됩니다. 저는 제 삶을 잘 살아보고 싶은 겁쟁이입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다정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나누는 행위는 그 자체로 품이 드는 일이고, 상대가 더 나은 결정을 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이타심이 전제되어야만 하니까요. 새삼 제 곁에 다정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P47 공감은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슬쩍슬쩍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등 뒤로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의 표정을 일일이 볼 수 없더라도, 당신의 감정을 세세히 공감할 수 없더라도, 가늘게 흔들리는 당신의 등에 기대어 내 숨소리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괜찮다고,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P143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이겁니다. ”얼른 일어나 아침 먹어. 먹고 또 자.“ 아...... 이 말은 비몽사몽간에도 유혹적입니다. ’그러니까 먹고 또 자도 되는거지? 그래도 된다는 거지?‘ [중략]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어서 와 앉으라고 따끈한 밥상을 차려주는 한 사람을 세상 모두에게 선물할 수 있다면, 그런 정도의 사랑은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P167 다정한 사람이 좋습니다.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그 사람에게 가면 ‘다정’을 경험하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세상이 내 편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사람. 밥은 먹었어? 따뜻하게 입어. 지금 네 마음은 어때? 몸과 마음 잘 보살펴 줘. 그런 말들이 가슴에 흐르는 사람. 이번 한 번만 세상을 용서하고, 세상과 잘 지내보기로 마음먹게 해주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