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 《오역하는 말들》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대로 희로애락이 있었을 거다. 어떻게 나는 그 시절을 한번 물어볼 생각도 않고 당신의 불행을 멋대로 단정했을까. 자고로 번역가라면 원문을 제대로 확인하려는 노력은 기울였어야 했다. 나와 내 아내가 내 딸에게 그렇듯이 당신이 나의 우주였다는 걸 까맣게 잊고 살았다. 내가 당신의 행복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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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가 돼 본 적이 없어서 부모의 마음이란 것을 잘 모르겠다. 부모가 돼 본 적이 없으니 좋은 부모에 대한 기준도 눈치 없이 높다. 부모는 이래야 하고, 부모니 이래선 안 되고 하는 내 안의 당위들이 내 아빠를 늘 자격 미달로 만들었던 것 같다. ‘완벽한 아버지상’을 기대하는 그토록 철없는 딸이었던가, 나는.
그런 아빠를 데리고 상견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한날은 아찔하고 한날은 오금이 저렸다.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이 펼쳐지면 어쩌나, 옛날 사람처럼 아들이니 딸이니 운운하며 제 살 깎아 먹기를 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 집 앞 카페에 한 시간 먼저 나와 있던 아빠를 차에 태우고 공항 근처의 한정식집으로 이동했다. 아빠는 나보다 더 긴장한 기색이었다. 빳빳한 새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를 다려 입은 낯선 모습으로, 가는 길 내내 조수석에서 별말이 없었다.
부모들은 약주를 기울이며 낚시니, 농사니, 제주도니, 편지니 하는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노련한 사회성의 끝을 보여주었다. 서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잘 모르는 주제더라도 공감하며, 기꺼이 궁금해했다. 나와 남자 친구, 자리에 함께한 동생들은 속으로는 벌벌 떨면서도 겉으로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투두둑 떨어지는 처마 밑 빗줄기로 자주 시선을 돌렸다.
식사의 마무리로 금귤 정과와 시원한 과실차가 나왔을 때 상기된 표정의 아빠가, 부끄러움 많은 우리 아빠가 입을 열었다. 늦게 만난만큼 두 사람이 더 열렬히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런 낯뜨거운 표현을 아빠의 입에서, 그것도 우리 가족 모두와 저쪽 가족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들을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말라거나, 서로를 늘 배려하라는 덕담과는 다른 온도로 다가오는 열렬히 사랑하라는 말.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등장하듯, 두 시간에 걸친 긴 식사의 끝에 나온 이 말은 그래서 더 잊을 수가 없다. 아껴온 말이었을까? 아빠의 말들에 참 많이도 상처받으며 살아온 나는 그제서야 생각한다. 혹시 나는 아빠의 말들을 무수히 오역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