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벤치, 세 가닥 고운 실타래

어스름한 저녁의 향기

by 젠틀LEE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저녁, 아내와 손을 잡고 산책 중이었다.

평소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 문득 한 곳으로 시선이 멈췄다.


마치 영화 화보의 한 장면처럼 빨간 벤치에 할머니 세 분이 앉아 계셨다.

빨간 벤치에 앉은 할머니들은 따뜻한 패딩을 입고 같은 곳에서 머리를 하셨는지 똑같이 예쁜 머리를 하고 계셨다.

주름이 깊었지만, 눈빛만큼은 소녀처럼 반짝였다.


한 분은 손에 들린 과일을 나눠 먹으며 다른 분은 옛날이야기를 꺼내고, 나머지 한 분은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걸음을 늦췄다.

아내도 나를 따라 멈춰 서서 그쪽을 바라봤다.


“저분들, 정말 행복해 보이네.” 아내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할머니들은 동네에서 만난 사이 같았고. 어릴 적부터 알아온 사이처럼 너무 친근해 보였다.

길고 긴 세월의 흔적 안에서 함께한 추억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나이.


한 할머니가 “이번주 금요일에 시장앞에 노래자랑 가서 흔들어야지?” 하며 손짓을 하자, 다른 두 분이 배를 잡고 웃었다.

서로에게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그분들의 웃음 한자리에 자리 잡을 것이다.


순수한 웃음 안에 마음속 어린 시절은 여전했다.




문득 나의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시골집 마당에서 할머니와 이웃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콩나물을 다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는 할머니 앞에서 뛰어다녀도 그저 흐뭇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셨다.


외할머니는 항상 “사람은 혼자서는 못 살아. 누군가 있어야 웃을 수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친구분들과 매번 깔깔대며 웃던 그때의 그 장면 속에서 지친 하루의 고됨을 웃음으로 풀고 있는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 말은 이제야 실감이 난다.


생활에 바쁜 나날 속에서 친구들과의 만남은 점점 줄어들었다.

고된 일상 속에서 마주한 할머니들의 모습은 예전의 추억들과 조우하게 만들었다.


아내가 내 팔을 살짝 끌었다.

“우리도 저렇게 늙고 싶지 않아?” 그녀의 눈에 장난기 어린 빛이 스쳤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우리도 매일 벤치에 앉아 웃자.”

우리는 그 자리를 여러 번 맴돌았다.





그날 이후, 나는 벤치를 지날 때마다 할머니들을 찾는다.

매번 볼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신다.


세 가닥의 고운 실타래는 그곳에서 오늘도 행복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가을저녁의 어스름한 공간 속 따뜻한 웃음소리에 미소를 머금고

오늘도 그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