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고립된 자리, 갈라진 틈새로 스며드는 것들.

by 블링

주민센터 문을 밀고 들어서는 노인의 걸음은 물을 잔뜩 머금은 솜이불처럼 무겁고 축축해 보였다.


"장판을… 들어내려고 하는데……."


모기 소리만 한 중얼거림에, 모니터를 향해 있던 공무원의 고개가 들렸다.


"어디요? 안방이요?"


노인은 그 날카로운 질문이 귓가에 닿지 않는 듯, 허공을 향해 시선을 던진 채 탁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내가 자는데… 장판이 자꾸 들려서 들어내야 한대서. 장판을 버리려면 여길 가야 한대서 온 거여. 한다니까. 어떻게 하면 돼?"

"어느 방이요. 안방이요?" 공무원이 친절하게 되물었다.

"내가 자는 방." "안방인가 보네요. 거기가 몇 평이죠? 8평이면 될까요?"

"그게 뭐야?"


노인의 메마른 입술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마치 피부 밑으로 무언가 기어가는 것 같은 이질적인 경련이었다.


"할머니, 방 크기가 몇 평이시냐고요. 8평인지 그것보다 작은지 맞춰서 폐기물 스티커를 뽑아드리려고요."

"자는 방 바닥을 들어내는데 스티커를 사 오라는데… 난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몰러…."


노인은 허공에 뜬 불안을 잡아채려는 듯, 주름진 손가락으로 민원대 가장자리를 꽉 쥐고 같은 말만 웅얼거렸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아니 자신의 존재를 한 번만 제대로 봐주기를 바라는 애처로운 안간힘이었다.


"제가 대략 8평이라고 하고 뽑아드릴게요. 이거 가져가서 붙인 다음에 밖에 내놓으시면 돼요."


공무원의 빠른 타자 소리와 함께 A4 용지 한 장이 출력됐다. 종이를 받아 든 할머니는 주민센터 중앙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허연 형광등 불빛 아래서 길 잃은 아이처럼 옆 사람을 향해 중얼거렸다.


"자는 방 바닥을 들어냈는데 이 종이를 받았어. 이걸 어떻게 쓰는지 당최 모르겠는데… 자네는 알어?"


그때였다.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김씨가 다가왔다. 그는 마치 할머니가 그 자리에 앉아 자신에게 길을 물을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손에 양면테이프와 가위를 쥐고 있었다.


"할머니, 제가 이 종이 뒤에 양면테이프를 붙여드릴게요. 댁에 가셔서 들어낸 장판을 끈으로 묶으시고, 그 위에 이걸 찰싹 붙이시면 됩니다."

"이거… 가서 장판에 붙이기만 하면 돼?"

"네, 할머니. 버리는 장판 위에 대형 폐기물 스티커 딱 붙이시면 돼요."


주민센터의 무거운 유리문을 밀고 나오자, 차가운 바깥공기가 할머니의 굽은 어깨를 훅 덮쳤다. 한 손에는 김씨가 정성껏 붙여준 양면테이프 달린 A4 용지가 힘없이 덜렁거렸다. 까만 글씨로 인쇄된 '대형 폐기물 처리 필증'. 그 낯선 단어들의 조합이 마치 세상이 자신에게 붙여놓은 폐기 처분 딱지처럼 서늘하게 느껴졌다.

세상이 언제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예전에는 장판 쪼가리나 망가진 물건 하나 버리는 게 이렇게 진땀 뺄 일이 아니었다. 골목 귀퉁이에 적당히 내다 놓으면 고물장수나 리어카가 거두어 가고, 이웃들끼리 눈치껏 품을 내어 치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버리는 일조차 구청 허락을 받아야 하고, 돈을 내야 하고, 알지도 못하는 '평수'와 '규격'을 알아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기계로 톡톡 두드려 단숨에 해치운다는데, 노인은 종이 쪼가리 하나를 얻기 위해 바보처럼 굽신거리고 쩔쩔매야 했다.


할머니는 낡은 단화 코가 시멘트 바닥에 질척하게 끌리는 소리를 들으며 비탈길을 올랐다. 길가의 번쩍거리는 간판들은 온통 읽을 수 없는 꼬부랑글씨였고, 이어폰을 낀 사람들은 저마다의 빠른 속도로 할머니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스쳐 지나갔다. 이 거대한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태엽이 끊어진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춰 서 있는 것 같았다.


'쓰레기 하나 내 손으로 못 버리는 쓸모없는 늙은이….'


깊은 자괴감이 쩍쩍 갈라진 발뒤꿈치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텅 빈 것처럼 허전하면서도, 가슴 밑바닥에는 시커먼 진흙이 고이는 것처럼 답답하고 무거웠다. 억울함인지, 서러움인지, 혹은 분노인지 모를 그 음습하고 나쁜 감정들이 명치끝에서 질척이며 꿈틀거렸다.


그것은 마치, 비가 며칠 내내 들이친 낡은 장판 밑의 곰팡내처럼 퀴퀴하고 불쾌한 기운이었다. 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가슴팍을 꾹꾹 내리눌렀다. 그 기분 나쁜 울렁거림이 그저 늙고 지친 탓인 줄만 알았다. 보이지 않는 검은 흙구덩이 속에서, 아주 작고 미끌거리는 것들이 자신의 우울한 냄새를 맡고 요동치기 시작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은행 안은 대기 인원 서른 명이라는 붉은 숫자가 무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번호표를 쥔 최 노인의 오른손이 의지와 상관없이 잘게 경련했다. 덜덜, 덜덜. 구겨진 종이 번호표가 그의 손안에서 파르르 떨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대기석의 푹신한 소파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누군가는 꾸벅꾸벅 졸며 평화롭게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하지만 최 노인은 소파에 앉을 수 없었다. 파킨슨병이 갉아먹은 그의 육체는 한 번 푹신한 곳에 주저앉아 버리면, 다시 일어나기 위해 온몸의 근육과 수십 분 동안 사투를 벌여야 했다. 관절은 녹슨 톱니바퀴처럼 굳어버리고, 다리는 바닥에 들러붙은 듯 떨어지지 않을 게 뻔했다. 결국 그는 앉지도 못하고, 꼿꼿이 서 있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은행 안을 서성였다.


다리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뻐근한 통증에 식은땀이 흘렀다.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끔찍한 공포가 숨통을 조여왔다.


"딩동- 356번 고객님."


최 노인은 자신의 번호가 아직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빈 창구를 향해 돌진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많이 불편합니다. 제 것부터 좀 해주세요!"


최 노인은 최대한 정중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무리한 요구에 난감해진 은행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 이러시면 안 됩니다. 번호표 뽑고 기다리셔야죠."

"제가 몸이 몹시 좋지 않아서 그럽니다. 부탁드립니다. 저부터 좀 해주세요."

절박한 읍소였지만, 순서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일제히 찌푸려진 시선이 최 노인의 등 뒤로 화살처럼 쏟아졌다.


"저기요, 어르신. 덩치도 산만 하신 분이 아픈 척 유세 떨지 마시고 뒤로 가세요. 다들 바쁜 사람들입니다. 번호 순서대로 해야죠."

"누구는 안 아픈 줄 아나. 덩치를 보니까 아주 정정하시구만."

"진상이네, 진짜."


대기석에 앉은 누군가의 날 선 목소리들이 귓등을 때렸다. 190센티미터의 장대한 체구, 파킨슨병으로 인해 뻣뻣하게 굳어버린 꼿꼿한 허리. 남들의 눈에 그는 그저 덩치를 무기 삼아 순서를 무시하고 생떼를 쓰는 늙은이일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억울함에 입술을 파르르 떨었지만, 굳어가는 턱관절 때문에 변명조차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수치심과 무력감이 뒤섞인 시퍼런 분노가 명치끝에서 왈칵 치밀어 올랐다.


'이것들이… 내가 걷지도, 앉지도 못해서 이러는 걸 알지도 못하면서. 건강하고 멀쩡하면서 나에게 양보도 못 해줘? 이렇게 정중하게 말했고, 내 사정도 말했는데? 난 아픈 노인이라고…. 너희도 똑같이 늙는다… 다 부숴버리고 싶어…!'


세상을 향한 날 선 증오가 뇌수를 흠뻑 적시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뻣뻣하게 굳어 감각조차 무뎌져 가던 할아버지의 종아리 안쪽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꿈틀했다. 핏줄을 핥아 올리며 무릎을 타고 기어오르는 차갑고 미끈덩한 감각. 그것은 파킨슨의 경련과는 완전히 다른, 아주 기괴하고도 생생한 생명체의 움직임이었다. 분노라는 훌륭한 먹잇감의 냄새를 맡은 축축한 것들이, 비틀린 노인의 육체 속으로 기뻐하며 파고들고 있었다. 대리석 바닥에 비친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마치 수만 마리의 지렁이가 기어 다니듯 미세하게 일렁였다.




삼겹살 불판 위에서 기름이 튀었지만, 김씨는 소주잔만 만지작거릴 뿐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김씨, 왜 그래? 아까부터 얼빠진 사람처럼. 어디 체했어?" 맞은편에 앉아 쌈을 싸던 장씨가 우물거리며 물었다. 옆에서 기름장을 찍던 권씨도 김씨의 안색을 살폈다.


"어… 아니, 그게. 내가 아까 은행에 좀 다녀왔는데 말이야."


김씨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한참 저으며, 현실일 리 없다고 부정하는 제스처를 지었다.


"은행? 번호표 뽑고 한참 기다렸나 보네. 그래서 기운이 쏙 빠진 거야?"


장씨의 가벼운 농담에도 김씨는 웃지 않았다. 대신 그가 탁자 위로 몸을 쑥 빼며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아니, 그게 아니고…. 거기서 어떤 덩치 큰 노인이 난동을 좀 피웠거든. 파킨슨병인지 뭔지,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서 앉지도 못하는 양반이 자기부터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그것도 엄청 정중히 부탁했지…. 그런데 사람들이 쯧쯧대면서 욕을 엄청나게 했어."


"아이고, 참. 아픈 건 안됐다만 떼를 쓰면 쓰나."


"그런데 말이야." 김씨가 소주를 단숨에 털어 넣고는, 빈 잔을 쥔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그 노인은 본인이 정중하게 말했지만,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은행원과 원성을 부르는 주변 사람들에게 화가 나서 이빨을 부득부득 가는데… 기어코 화를 참으면서 밖으로 나가더라고…. 그런데 화를 참아서 그런 건지, 종아리 핏줄 밑으로 뭔가 미끄덩거리는 게 쑥 기어 올라가는 걸 내가 똑똑히 봤어. 아니, 사람 핏줄이 그렇게 굵을 리가 없잖아. 무슨 팔뚝만 한 뱀 새끼가 피부 밑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았다니까."


장씨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에이, 이 사람아. 하지정맥류 아냐? 노인네들 다리 핏줄 툭툭 불거지는 거 하루 이틀 보나. 노안 왔구만, 김씨."


"아니라니까! 그 그림자를 봤어야 해! 대리석 바닥에 비친 그림자가… 가만히 서 있는 사람 그림자가 막, 막 지렁이 수만 마리가 엉켜서 득실거리는 것처럼 일렁였다고!"

김씨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높아졌다. 식당 안의 몇몇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묵묵히 고기를 굽고 있던 권씨가 집게를 내려놓으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지렁이가… 득실거렸다고?"

"어, 어. 그래. 환장하겠네, 진짜. 내가 헛것을 본 건가 싶기도 한데… 그 순간 은행 안에 확 퍼지던 그 비릿한 하수구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맴돈다니까."


하수구 냄새. 그 단어에 김씨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얼굴이 있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까."


김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제 주민센터에서 폐기물 스티커를 못 붙여서 쩔쩔매던 할머니를 내가 좀 도와줬거든. 근데 그 할머니한테서도 똑같은 냄새가 났어. 비 오기 직전에 그 시궁창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퀴퀴한 하수구 냄새 말이야…."


장씨의 젓가락질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항상 진중하던 권씨의 미간에도 깊은 주름이 패었다. 단순한 헛것으로 치부하기엔, 김씨의 눈빛에 깃든 공포가 너무도 생생하고 끈적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던 동네의 저녁 공기가 서서히 서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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