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yons
아름다운 곳을 떠나서 아름다운 길을 따라가면 또 다른 아름다운 곳이 나타났다.
홀스슈밴드에서 브라이스캐년까지 차로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브라이스캐년의 선셋뷰티를 감상하기 위해 우리는 이동 중 과일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쉬지 않고 달렸다.
여행의 목적은 과정의 만족들이 모여 느끼게 되는 행복이지만 시간과 재원은 한정적이므로 무조건 만족만 있을 순 없다. 부지런하든지, 여유를 포기하든지, 제일 좋은 타이밍을 놓치든 지 때론 배를 곯든지 뭐든 포기해야 할 때가 종종 생긴다.
우리는 배고픈 걸 선택한 덕분에 시간에 딱 맞춰, 해 질 녘, 브라이스 캐년 선셋포인트에 도착했다.
미서부 최고의 빛이라는 브라이스캐년의 지는 해는 내 발아래 있는 수많은 붉은 첨탑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달구며 황금색으로 타오르게 했고, 그때 우리의 정신머리도 함께 타서 없어져버렸나 보다.
변덕스러운 협곡의 날씨가 어스름과 함께 구름을 몰고 오며 찬란했던 시간을 마무리 지으니 극단적인 시장기와 배변의 욕구 두 가지 본능이 함께 찾아와 우리를 불운으로 몰고 갔다.
"카메라 주라. 내가 챙길께." 남편은 화장실에 가며 평소 내가 뭐든 질질 흘리고 다니는 팔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매사 남편이 날 못 미더워할 때마다, 그동안 뭘 잃어버리거나 잘못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나 역시 나 스스로보다 남편의 말을 더 신뢰했다.
에세이를 적다 보니 그간 남편 놈은 나를 가스라이팅 하고 있었구나...
어쨌든 남편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던 난 순순히 카메라를 남편에게 건네주었으며 그렇게 우린 브라이스캐년 선셋포인트 남자화장실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렸다.
오직 식탐으로 가득 찬 800억 개의 뇌세포는 화장실에 카메라를 놔두고 온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호텔 편의점에서 장보고, 숙소에서 저녁상 차리기에 바빴다. 오늘도 행복한 저녁식탁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순간....
"오빠, 카메라 어디에 뒀노? 아까 화장실에서 들고 나왔나?"
우리는 순식간에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곧바로 브라이스캐년 선셋포인트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당연히 카메라는 없었다. 미국 가면 총 맞아 죽는다며 미국엔 가기 싫다고 했었던 남편은 컴컴한 밤중에 이성을 잃고 카메라의 흔적을 찾기 위해 타인에게 접근했다.
150만 원짜리 분실은 남편이 겁을 상실하게 만들고 갑자기 영어가 트이게 했다.
"남자화장실에서 카메라를 본 적이 있으세요?"라고 물으며 다가가는 남편 때문에 상대방이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며 여긴 미국이었지 싶었다. 밤중에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가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이었다. 불운이 더 큰 불운을 끌고 올까 봐 차에서 내려 남편을 달래 호텔로 데려왔다.
화병으로 잠 못 이루는 밤,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짜증스러움과 동시에 안심이 되었다.(다음날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므로..) '그래, 니라도 푹 자라!'
내 골머리를 썩이는 사람은 언제나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 용서할 수밖에....
브라이스캐년의 해 질 녘 황홀했던 그 은혜로운 광경은 나에게 회한이 되고 또 밖으로 쏟아낼 수 없는 화가 되어 내 가슴속에서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