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yons
홀스슈밴드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붉은 흙과 파란 하늘이 완벽하게 대비되도록 만들었던 이글거리는 태양아래서 인디언 가이드와 작별인사를 한 게 고작 10분 전이었는데 어느새 주변은 어둑해지고 서쪽 멀리, 동쪽 멀리에 꽤 큰 비구름이 보였다.
주차장에서 뷰포인트 까진 30분가량 걸어야 했다. 그 사이 서쪽에서 오든, 동쪽에서 오든 비구름이 당도할까, 달리듯 걸었다.
30분의 도보 후 비탈면을 내려가면 그 끝 절벽아래 콜로라도 강이 말발굽 모양의 협곡을 굽어 흐른다. 널찍해서 완만해 보이지만 먼지가 풀풀 날리는 모래 비탈면은 꽤 경사가 있는 편이어서 발을 잘못 디디면 쭉쭉 미끄러졌다. 눈앞의 광경에 흥분해 속도조절을 하지 않으면 가속도가 붙어 그대로 절벽아래로 뛰어내리게 될 수 있으므로 안타깝지만 절경대신 바닥을 보며 스스로 브레이크를 잡고 내려가야 한다.
뷰파인더 안엔 말발굽 모양의 협곡, 굽이치는 강, 그 너머 펼쳐진 평원 그것과 맞닿은 하늘, 그 모든 게 있기는 했지만 뭔가 웅대함은 없고 황량함만 있었다. 하찮은 내 감각으로 홀스슈밴드의 장관을 곧이곧대로 담아내는 것도, 남편이 그 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뷰포인트를 찾는 것도 불가능했다. 몇 번의 시도 후 결국엔 누군가의 그럴듯한 인스타 사진을 모방하려 했지만, 뭐가 문제인 건지 사실 따라 하는 것도 쉽진 않았다.
'그래 그냥 눈에 담아 가자.'
중국인 패키지팀이 밀고 들어왔다. 미국인데 온통 검은 머리들이 휘젓고 다녔다.
"헤이, 헤이!" 내가 서있었던 곳에서 나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아줌마는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사진을 찍으라고 명령했다. 대충 몇 장 찍어줬더니 다시 핸드폰을 건네며 저기 가서 이렇게 찍어라, 뭐 어째라 요구사항이 많았다. 중국말은 '쎄쎄'만 알아듣는 정도지만 눈치껏 시키는 대로 하고 다시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사진을 넘기며 검수하는 아줌마의 짜증 섞인 표정은 못생긴 얼굴을 더욱 못생기게 만들었다. 내가 아는 중국말은 '쎄쎄' 뿐인데 그 말은 끝까지 듣지 못했다.
"한국 사람이세요?" 남편과 나의 한국말을 듣고 누군가가 반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엔텔로프캐년에서 봤던 그 자유영혼들이었다. 억겁의 인연이 쌓여야 옷깃 한 번 스친다는데, 그 자유영혼들과 우리가 엄청난 전생의 인연이었나 보다. 퇴직 후 미국 사는 자식들 따라 이민 왔다는 그들은 시애틀에서부터 페이지까지 운전해서 왔다고 했다.
타국에서 동향 친구를 사귀면 자유영혼들만큼 막역한 사이가 되는 걸까?
하루아침에 얼굴만 확 늙어버린 초딩들처럼, 초딩 때 친구를 만나 다시 초딩이 된 듯, 자유영혼들의 장난은 개구졌고, 즐거운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도 인생의 역경은 겪어보지 못한 것 같은, 한도를 초과해 버린 천진난만함, 나의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주어도 그게 나의 허물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함께 바보가 돼주는 먼 길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자유영혼들의 인생은 아주 성공적인 듯했다.
단지 한국말을 쓴다는 이유로 오랜 벗을 만난 듯 반가워하는 그들에게 죄송스럽지만, 난 낯을 많이 가린다.
비구름을 몰고 오고 있는 거센 바람에 간혹 물방울이 느껴지기도 해서 서로의 여행을 격려해 준 뒤 급하게 헤어졌다.
아름다운 곳을 떠나서 아름다운 길을 따라가면 또 다른 아름다운 곳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