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yce Cayon2

Cayons

by blingzoomma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길 기분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묵은 호텔은 조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도저히 아침햇살이라고 할 수 없는 뜨겁고 눈부신 햇볕이 밤새운 내 피곤하고 붉은 눈에 내리쬐어 아찔하게 어지러웠다. 땅이 넓은 미국은 호텔룸에서 식당가는 길도 멀었다. 남편과 난 한마디 말없이 각자 떨어져 걸었다.

고칼로리 음식으로 가득한 식당엔 우리 빼고 모두 즐거워 보였다. 사과 1개, 팬케이크 한 조각을 접시에 담고 웨이터에게 커피를 요청했다. 사과는 밍밍했고 팬케이크는 죄가 없었지만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커피뿐이었다. 사과 한 입, 팬케익 한 입으로 멀리 걸어온 게 무색할 만큼 우리의 식사는 빠르게 끝났고 커피를 가져다준 웨이터에게 팁을 줘야 하는데 남편이 지갑을 안 가져왔다.


여행을 할 때 우리 부부는 역할분담이 확실하다. 난 계획과 의사소통, 남편은 운전과 총무.

에세이를 쓰다 보니 사이즈가 크든 적든 실수가 잦은 사람은 오히려 남편이었다는 사실을 또 깨우쳤다.

내가 머구리 든지, 남편이 가스라이팅의 달인이든지...

생각해 보면 남편은 실수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남편이 본인의 실수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주장을 하든, 또는 그의 실수를 교묘하게 전화위복으로 둔갑시켜 말하든 그 요사스런 세 치 혀가 내게 꽤 통하는 편이다.


남편이 카메라를 잃어버린 걸 알았을 땐 화가 났다기보단 참담했었다. 그래서 더욱 괴로울 것 같은 남편을 도리어 위로했었다. 그런데 지갑하나 챙기지 않은 남편의 마이너 한 부주의함이 오히려 단전에서부터 화가 솟구치게 만들었다. 이땐 남편의 영악한 혓바닥이 나를 홀리려 스리슬쩍 비집고 들어올 틈이라곤 없었다.


"팁 고마 안 주면 안 되나?"라며 눈치 없이 귀찮아하는 남편에게 당장 룸까지 튀어갔다 오라고 눈알로 레이저를 쏘았다.


지갑을 가지러 간 남편을 기다리며 먹다 남은 음식을 앞에 두고 '멍~'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팁을 기대하는 자본주의의 친절을 몸에 완전히 장착했거나 또는 슬퍼 보이는 멍한 표정의 동양여자에게 마음이 쓰였거나 아님 k팝 팬이던가,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거의 먹지 않은 접시를 앞에 두고 앉아 있는 나에게, 웨이터는 "음식이 어떤가요?"로 시작해서,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나도 모르는 k팝 가수에 대해 주절거렸다.


문득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길 갈 때 목표 없는 표정으로 다니면 '도를 아십니까'가 따라붙는다고..

선생님의 요지는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다니면 타깃으로 삼기 쉬운 인상을 준다는 것이었지만, 어쩐지 내 귀엔 백치미도 매력이 될 수 있겠다, 그렇게 들렸었다.

어쨌든 난 낯을 가리고, 기분도 별로고, 잠도 못 자서 외국어로 길게 대화를 할 컨디션이 아니었다.

커피 한 잔을 더 부탁했다.




오밤중에 수 차례 들락거렸던 징글징글한 브라이스캐년 국립공원에 또 들어섰다. 찾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남편은 최선을 다하기로 결정했고, 난 '그래 어디 해보든지!'였다. 우리는 Lost&Found 만 네 군대를 다니며 분실물 등록 서류를 작성했다.

Lost& Found의 역할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것 이라기 보단 위로와 희망고문 일지도 모른다. 분실물 등록서류를 작성하며 아직 뭔가 해볼 게 있다는 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그곳에서 전화가 올까 봐 우리는 브라이스캐년 국립공원을 떠나지 못했다.




<덧붙임.>

"뭐 하는데?'

혼돈의 카오스가 몰아쳤던 날, 남편은 브라이스캐년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카메라를 가져간 나쁜 놈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있었다.


남편은 그놈에게 최대한 불쌍해 보이도록 어필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콩글리쉬는 한국인인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미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버린 사태, 남편 잡도리를 해봐야 그냥 에너지 소모일 뿐, 난 그저 가만히 있었지만, 이 와중에 되레 조용한 게 독이 바짝 올라 있는 상태란걸 남편은 본능으로 느꼈다. 감히 내게 부탁하지 못하고, 혼자 말도 안 되는 영어(?) 문장들과 버둥거리고 있는 남편이 짠해졌다. 남편에게 핸드폰을 빼앗듯이 낚아챘다.

"뭐라 쓸꼬?!"


Dear someone who found camera at Bracy Canyon man's restroom.

(브라이스캐년 남자 화장실에서 카메라를 발견한 그 누군가에게)

You can take the camera if you want.

(당신이 원한다면 카메라를 가지셔도 됩니다.)

but only send picture to me please. My e-mail address is....

(하지만 사진만은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Let me Know your address. I will give you another battery and lens that isn't useful for me anymore.

(당신의 주소를 알려주시 이젠 내게 필요 없어진 다른 렌즈와 배터리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남편은 카메라를 가져간 양심도 없는 놈이 멍청하기까지를 바랬다. 아님 진짜 나머지도 갖다 바칠 만큼 사진이 간절했을까?


남편이 얼마나 절박하든지 말든지 인터넷 속도는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한 자 한 자 엇엇엇엇 박자로 타이핑되는 속도, back키도 안 먹고, 결국 내가 쓴 메시지는 남편의 콩글리쉬보다 더 알아먹기 힘든 암호문이 된 채, 급기야 화면이 정지되었다. 짜증스러운 마음에 아무 키나 막 눌렀다. 아무거나 누른 키 때문에 글이 업로드되었는지 삭제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업로드 되었다 해도, 도둑놈이 홈페이지 게시판을 기적적으로 봤다 해도, 심지어 그놈이 양심도 없는 똥멍청이라 해도 암호를 해석할 수 없을 것이므로 우리에게 본인의 주소를 알려줄 일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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