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t Lake City

Salt Lake City

by blingzoomma

언젠가 친구가 미국여행에서 뭐가 제일 기억에 남냐고 물었을 때, 그 모든 장관들을 제치고 난 도로라고 말했다. 미국땅이 어마무시하다는 것을 도로를 보고 실감했고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도 미국도로에서 목격했다. 그중 하나를 말해보라면, 왜 타이어에 파이크를 달고 다니는 건지, 전투용인가? 심지어 옆 차를 위협할 정도로 긴 것도 있었다.

이 진기명기한 광경을 사방에 두고 달리며 우린 웬만해선 말을 섞지 않았다. 우리의 결혼식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역경과 고난은 함께 헤쳐가리라 선서했었는데 십 이년이 흘러 선서는 무색해지고 우리는 자신의 고뇌를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있었다.




멀리 뵈는 산은 설경을 자랑하고 아스팔트 도로엔 아지랑이가 이글거렸다. 높은 빌딩숲의 모습은 서울 을지로 같았지만, 을지로와 다른 점은 그 빌딩들 사이로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체크인종료시간 딱 1분을 남기고 6시 59분에 솔트레이크시티 숙소에 도착했다. 일분만 늦었어도 노쇼 처리될 뻔, 화가 화를 부를 뻔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뭔가 좀 수상했다.

숙소를 예약할 때도 예약완료 후 따로 연락이 와 여권정보까지 제공하라고 했었다. 찜찜한 마음에 미루다 , 호텔스*컴에 등록된 업체가 뭔 짓을 하겠어? 라며 큰맘 먹고 남편과 나의 여권정보를 넘겼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우리 신상 어느 부분이 맘에 안 들었는지 자동예약취소 안내였었다. 왜? 보다 헉! 큰일 난 건가 싶어 호텔스*컴에 항의했었다. 호텔스*컴에서 알아본 바, 별 의도는 없고 숙소에 리모델링 계획이 생겼다 했지만, 진위는 알 수 없다.

아직까지 우리 부부가 국제범죄에 연루되었다며 국정원에서 잡으로 왔다든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 예약한 숙소가 체크인종료시간이 존재하는, 그것도 그 시간이 오후 7 시인 숙소였다.





정신적인 충격은 여전하지만, 하루 종일 소화시킨 것이라곤 커피 두 잔인 내 장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며 신체적 쇼크를 극복했다.

"저녁 뭐 먹을 건데?"

"이 집 스테이크 맛집이란다."

150만 원짜리 카메라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추억을 분실한 남편이 선택한 저녁메뉴는 또 스테이크였다. 여기가 텍사스였다면 다를 수도 있지만 미국도 소고기는 비쌌다.


인터넷으로 발굴한 스테이크 맛집을 향해 걸어가는 길, 횡단보도에서 신호등 색이 바뀌길 기다리던 중, 거의 텅 빈 트램이 지나갔다. 평일이었고 저녁 7-8시는 퇴근시간 일 텐데, 이 대도시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보여주기 식의 도시인 듯, 또는 종말이 휩쓸고 간 이후 소수만 겨우 살아남은 듯 기괴했다.

맛집이라고 안내된 식당엔 한 명의 손님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아 스테이크와 파스타 그리고 까르베네쇼비뇽 2잔을 주문했다. 한 그릇도 팔지 못한 것 같았지만, 우리가 한 주문을 끝으로 웨이터는 식사용으로 세팅된 테이블을 주점용으로 전부 변경하였다. 텅 빈 거리, 손익분기점을 넘길 만큼 손님이 있을 확률, 내가 봤을 땐 거의 0%, 하지만 그들은 테이블을 세팅하고 또 그것을 시간에 맞춰 변경하였다. 신선도 유지기간이 짧은 식재료를 최대한 써내기 위한 전략인가? 단 한 명의 손님을 위해서라도 영업시간을 준수하겠다는 정책인가...

불현듯 일요일마다 브런치에 꼬박꼬박 글을 올리는 나에게로 생각이 건너뛰었다.


미국에선 까르베네쇼비뇽을 주문하려면 까르베네까지만 말해야 한다. 까르베네쇼비뇽을 달라고 했더니 쇼비뇽블랑을 가지고 왔다. 화이트와인이 담긴 잔을 황당하게 쳐다보며 나도 모르게 "난 까르베네쇼피뇽을 주문했는데요"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웨이터는 마치 내가 틀리게 말한 것처럼 "까르베네?"라고 수정하듯 확인하고선 새 와인을 가져다주긴 했지만 뭔가 내가 잘못말해놓고 우긴, 진상이 된 것마냥 뒷 맛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시간 나의 갑툭튀는 옳았다. 까르베네 쇼비뇽을 주문했다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 난 말하지 못했을 거고 소고기스테이크에 화이트 와인을 마셨을 거다. 그건 완전 똥술이다 똥술.


텍사스가 아니어도 미국은 역시 스테이크 맛집이었고 가격은 사악했다. 분명 다시 가져간 화이트 와인은 계산서에서 빠져있었음에도 한국돈 218000원?

테이블 위에 올려진 계산서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손님이 단 한 명일지라도 이들이 영업을 하는 이유를 조심스레 짐작했다. 내 상황이, 어쩌다 거미줄에 걸려 마지막 액기스 한 방울까지 쭉쭉 빨리는 가련한 곤충의 말로 같았다.

"Night."

나를 거덜 낸 그는 너덜너덜해진 나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굿바이 인사를 했다.



뭘 하려는 의지가 없기도 했지만 우리가 미국에 온 후 처음으로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었다.

느긋하게 브런치를 해결하려 숙소 근처 푸드코트를 찾아갔다. 넓은 식당가에 맥도**, 써브**을 비롯해 갖가지 패스트푸드점이 즐비했지만 식사 중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가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었다. 써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커피를 주문하려 맥도널드를 향해 거의 푸드코트 반바퀴를 돌아가는 중 써브웨이 사장님이 우리의 신용카드를 흔들며 다급하게 우리를 불러 세웠다. 우리가 잊고 간 신용카드를 건네주려는 의지가 있었던 좋은 사장님 덕분에, 또 그 넓은 푸드코트에 사람이 많지 않아 우리가 쉽게 발견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미국에서 치안유지 1등이라고 한다. 솔트레이크시티를 다니며 사람이 없어서 안전한 건가? 생각했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남이 잃어버린 걸 찾아주려 다급하게 쫓아오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신용카드 하나 들고 쫓아왔다고 뭔 과대평가냐 생각들 하신다면, 보통 그냥 가지고 있다가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기억도 못하는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버리는 사람이 다수일 테다. 착한 사회는 착한 개인을 만들고 개인이 나쁘다기 보단 집단이 나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쁜 사회에 살고 있는 나쁜 사람이 타인의 잃어버린 신용카드를 발견했을 때 할 수 있는 나쁜 짓은 내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내 남편은 카메라를 잃어버리고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keyword
이전 08화Bryce Cayon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