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yoming
"10분 정도 차이 나는데, 고속도로 말고 국도 탈까?"
"너도 나도 쌩쌩 달리니깐 쫌 겁나제."
"겁나긴...가면서 경치도 구경하고 그러잔 거지."
남편은 아니라고 했지만 100% 아닌 게 아님을 알았다. 애매하게 에둘러 말하는 남편의 말버릇을 몰랐다면 난 고속도로를 고집했을 거다.
물이나 한 병 사자며 쓰러져가는 슈퍼 앞에 차를 세웠다. 밖에선 영업을 하긴 하나 싶던 구멍가게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더니 철판에 패티를 굽고, 토치로 불맛까지 입혀 즉석에서 버거를 만들어주는 편의점이 극적으로 나타났다.
"밥 먹고 가자."
남편은 치즈버거와 콜라를 난 치킨텐더와 커피를 주문하고 편의점 마당에 있는 나무테이블에 휴대용 비닐테이블보를 깔고 밥상을 차렸다.
우리의 목적지는 와이오밍주에 있는 젝슨홀이었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고작 한 시간 떠나왔지만 주변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황량함은 어느새 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푸릇푸릇한 초원으로 바뀌었다. 황색이 뜨거움이었다면 초록은 상쾌함을 품고 있는 듯 목언저리에 부드럽게 스치는 브리즈의 느낌이 적당히 시원했다.
식사 테이블 옆,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키 큰 은사시나무의 잎은 산들바람에 나풀거렸고, 햇빛에 반짝거렸고, 우리의 피크닉테이블은 더할 나위 없었다.
어린이 시절 내가 크레파스로 그린 집들은 푸른 언덕 위에 있었다. 집 옆에, 집 보다 큰 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고, 문과 격자무늬 창문이 있는 집이었다. 어쩌면 그 집은 어린 시절 나의 드림하우스였을까? 어쨌든 미국 국도를 달리는 중 내가 그렸던 그림으로만 존재하던 꿈의 집 현실판을 보았다.
높고 가파른 푸른 언덕 꼭대기에 빨간 벽돌집 한 채가 있었다. 꼭대기의 빨간 벽돌집, 그 집까지 오르는 길과 그 중간쯤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말고는 온통 풀이난 푸릇푸릇한 언덕이 이었다.
알프스소녀 하이디를 보고 자란, 불혹을 훅 넘긴 F 성격의 아줌마들이 그 언덕 위의 집을 봤다면 그 시절 그들의 판타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고 느꼈을 것이며, '나 역시 그랬었다' 쓰는 편이 그나마 더 공감을 받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글은 최대한 솔직하게 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내 글엔 타인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실어야 맞는 거니깐...
난 그 집을 보고 '평행세계가 실존할 수도 있겠다' 의심했다. 또 다른 내가 아니라면 어떻게, 저렇게 찰떡같이 어린이 시절 내 마음속의 집을 재현할 수 있을까? 아~. 그나마 몇 명 되지 않는 구독자들과 좋아요들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래도 솔직하련다.
남편이 선택한 국도는 아마 산을 넘어가는 도로인 것 같았다. 완만하던 대문자 S 도로는 점점 좁아지고 경사가 심해져 소문자 s가 되었고, 간혹 심장이 졸여지는 순간도 있었다. 이런 가파른 산악지대에서 양 떼를 만났다. 양과 염소의 차이는 양은 들판에서 키우고 염소는 산악지대에서 키운다고 지리시간에 배웠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그들은 양의 탈을 쓴 염소 떼였던 걸까? 길가는 양 떼를 모두 기다려준 어떤 오래된 CF처럼 우리도 차를 세우고 양들이 도로를 모두 건너도록 기다렸다. 그 뒤로도 저속으로 달리는 각종 농기계들을 만나 그 뒤를 졸졸 따라가며, 언젠간 도착하겠지, 세월아 네월아 산을 넘었다.
창밖에 자작나무 숲과, 자작나무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목조주택들이 슥슥 지나갔다.
대시보드 위엔 소금시궁창에 빠졌었던 내 운동화가 바짝 말라 돌땡이처럼 딱딱해지고, 미처 씻어내지 못한 소금알갱이들이 허옇게 번쩍거렸다. 창문으로 흡수된 복사열에 내 운동화가 신기 좋게 마르는 동안 우리는 자작나무가 자라는 위도까지 올라왔고 이제 거의 도착했나 보다.
남편이 경치구경 어쩌고로 포장한 국도 드라이빙은 예상보다 10분이 아니라 반올림해서 2시간 정도 늦어졌지만 2시간 이상의 값어치를 했다. 우리는 느리지만 한 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와이오밍에 도착했다. 남편에게 "소 뒷걸음치다 쥐 잡았네" 그랬더니 남편은 귀여운 입을 삐죽거렸다.
"먼 길 운전하느라 고생했어,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