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kson Hole

Wyoming

by blingzoomma

처마에 매달린 꽃들이 먼저 맞이해 주는 마트에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장기가 발동되어 쇼핑충동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마트에 들어서기 전 우리는 꼭 필요한 것만, 꼭 먹을 것만 신중하게 구매하기로 했었다. 돈도 돈이지만 4일 후엔 우리 똥쉐마와 이별을 고하고, 국내선을 탑승해야 하므로 가급적 짐을 줄여야 했다.


행복했던 순간, 도 닦는 마음으로 견뎠던 순간, 그러다 또 생각하면 분통 터졌던 순간, 남편이 미웠다 예뻤다, 그런 모든 미친년 널뛰듯 요동치는 마음들과 함께 여행도 반이 지났고 반이 남았다. 그래도 짐을 줄여야 하는 때가 왔음을 생각했을 땐 남은 일분일초가 아쉽고 아깝고, 그랬다.


보기보단 맛없었던 과일박스, 다시 속지 않아, 그래서 패쓰~, 아주 달디달고 단 맛이 눈에 보이는 단단한 설탕크림이 올려진, 누가 봐도 미국머핀, 난 당겼지만, "와 맛있겠다" 외쳐도 남편이 귓등으로도 안 들어서 패스, 화려한 컵케잌들, 이것도 남편이 고사해서 패스, 남편이 골라온 몇 가지 음식들, 뭐였는지 보지도 않고, 내가 빈정 상했으므로 패스, 이런 식으로 우리가 그 마트에서 산 건 오직 와인 한 병이었다.


그곳이 우리가 만날 마지막 마트였음을 알았다면 상대방이 먹고 싶은 음식에 그렇게 야박하게 굴지 않고 뭐라도 샀을 텐데, 미리 스포 하자면 이기적이고 유치한 마음들 때문에 우리는 옐로우스톤에 머무는 동안 근근이 먹고 살 예정이었다.


미국드라마를 보면 고등학생들이 아주 당연한 듯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별거별거 다하드만, 와인 구매자의 연령을 확인하기 위해 직원이 달려왔다.


사실 별 해프닝은 아니지만 느낀 바가 있었다. 그 소감을 글로 공감을 얻자니 에피소드에 비해 부연설명이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할까 쓸까 고민했던 시간이, 이 길고 긴 토 달기보다 길었다.

결국 쭉 다 읽으실지, 이 부분은 건너뛰고 읽으실지, 아님 여기서 창을 닫아버리실지는 읽으시는 분들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what is your date?"

언젠가 본 미국 드라마에서 상대방에게 데이트 상대가 누구냐고 질문할 때 who가 아니라 이렇게 말한 걸 본 듯하다. 데이트 상대가 사람이 아닌 귀신인지, AI인지, 뭐 그럴 수도 있으니깐. 그리고 파파고에게 번역을 시켜보면 '너의 날짜는 뭐니?'라고 나온다. 아무튼 내게 이렇게 말한 마트 아줌마가 알고 싶은 건 술을 사려하는 내 나이였다.


똑같은 문장의 의미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외국어니깐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당황스럽지만, 우리에겐 너무 자연스러워서 느끼지 못할 뿐 우리나라 말도 마찬가지 일 때가 많다. 예컨대...


저건 무슨 배인가요?라고 질문했을 때 답은 화물선이나 여객선이 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신고배 또는 황금배가 될 수도 있다.


미국생활 일주일정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알아듣게 되어 내가 몇 살인지 말해주었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서 와인과 맥주를 구매하며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내 귀엔 what is your day?" ("오늘 어때요?") 이렇게 들렸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가 삼천포로 빠진 적이 있었다.


나 중심으로 이해한 대화

라스베이거스 가게 사장님: what is your day? "오늘은 어떻나요?"

블링줌마: wonderful. this is lasvegas! 사장님 친절하시네 생각하며, "라스베이거스에 오니 너무 좋네요."

라스베이거스 가게 사장님: your right. this is lasvegas! you are so funny. "재미있으시네, 맞아요 여긴 라스베이거스지요."

블링줌마: 엥?! 내가 왜 웃기다는 거지???


가게 사장님 중심으로 이해한 대화

라스베이거스 가게사장님: what is your date?("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블링줌마:wonderful.this is lasvegas!("여긴 라스베이거스, 흥청망청의 도시니깐 나이 같은 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술 주세요." )

라스베이거스 가게 사장님:your right. this is lasvegas! you are so funny.("재미있으시네, 맞아요 여긴 라스베이거스니깐 술 가져가세요." )


부족한 영어 실력이 재치로 둔갑하는 순간, 난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의사소통의 수단임을 확실히 느꼈다. 내가 우리나라말을 할 때, 때론 정확한 문법과 정확한 단어를 구사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그랬다. 그런 말들을 정확히 듣고 직역하여 이해하려 하면 오히려 미궁에 빠졌다.

쓰다 보니 갑자기 what is your birthdate? 중 그들이 흘려 말하는 birth 부분을 내가 못 들은 걸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지금 이 순간 들지만, 그렇다고 해도 영어는 의사소통이므로 주변상황에 맞춰 이해해면되고, 때론 네이티브들도 틀리게 말하므로, 틀리게 말했다고 주눅 들 필요도 없고, 그냥 어깨피고 당당하면 되는 건데....


그런데 스스로 부족하다 여겨지는 부분에 당당하기가 참 쉽지 않다. 그래서 영어는 능글능글한 성격이 좀 받쳐줘야 는다.




이름값 제대로 하는 구불구불한 스네이크강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난 도로를 달려 우리가 머물 호텔에 도착했다.


서로 지지 않으려 유치 뽕짝인 미국과 중국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도긴개긴이다. 일단 자기 나라가 대국이란 자부심이 있는 점, 놀라운 반전매력을 뿜뿜 뿜어낸다는 점.


야생동물을 먹고 전 세계로 전염병을 퍼트린 문화적 불모지라고 여겨지는 중국은 막상 가보면 사람인 척하는 로봇이 서빙을 하는 최첨단 과학기술국이라고 하고, 세계에서 제일 좋은 화장실은 중국에 있다나....


사람을 화성에 여행을 보내네 마네 하는, 미래 시대일 줄 알았던 미국에 와보니 물가는 선진국, 시설과 서비스는 전산화되지 않은 수동, 그 부작용으로 체크아웃하지 않은 룸의 문을 따고 들어와선 본인이 더 놀램. 공공화장실 위생 수준은 중국인도 열었다가 기겁을 하고 문을 '쾅' 닫아버릴 정도, 요도 대신 땀샘이 죽어라 일하는 계절이었음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중 젝슨홀의 극과 극은 넘사벽이었다.


이름부터 미국 촌티를 팍팍 풍기는 이 산골마을의 파워는 사실 전 세계 경제를 들었다 놨다 흔들었다 하며 전 세계 사람들을 조종한다.


그래서 그런지(아무래도 계절도 좀 타고, 어느 시점에 예약했는지가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젝슨홀에서 1박에 100만 원 미만을 지불하고 묵을 수 있는 곳은 귀했다.

그래도 존재하긴 해서 1박에 약 35만 원짜리 숙소를 찾았다. 1박에 35만 원은 우리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무난하게 묵었던 숙소들의 평균가격이었다. 그런데 해당 숙소의 후기로 추측한바, 젝슨홀에서 35만 원짜리 숙소의 컨디션은 룸도 아니고 헛간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장님이 심히 불친절합니다.' 이것은 ok. 친절한 사장님을 만나자고 65만 원을 더 줄 순 없으니까, 가격 승!

'룸에서 바퀴벌레, 지네, 등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숙소가 목장인데 뱀을 봤어요.' 심히 충격! 더 읽을 필요도 없었다.


조금 더 양보해서 70만 원대까지 딜할 수 있으니 좀 깨끗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젝슨홀 숙소 선택지엔 오직 블랙엔 화이트뿐 회색지대는 없었다. 우리의 선택지는 극과 극에 있었다. 100만 원 넘게 주고 숙소 플렉스 한번 뽐내보든지, 해충들과 동침을 하든지. 절망!


지금은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2024년엔 미국 물가가 갑자기 치솟아 미국사람들도 먹고살기가 힘들다고 했었다. 미국보다 화폐가치가 저렴한 나라 국민인 나에겐 환율 상승도 의미가 컸다.

그런데 와이오밍 산골짜기에 있는 이 깡촌은 고물가 고환율에,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힘을 뒷 배 삼은 바가지까지 보태는 관광촌이었다.


들어가는 기념품 샵마다 잡으면 가격만 확인하고 놀란 가슴 쓸어내리게 된다. 우리나라 가격표보다 숫자 개수도 적은데, 개수를 잘못 헤아렸나 의심하며 뚫어져라 쳐다보게 되고, 내가 환율 계산을 잘못한 건가 굳이 핸드폰 계산기를 두드려 셀프 확인사살을 당했다.


산골마을이 감당하기엔 사람도 많았다.


총량보존의 법칙을 다시 언급하게 되었지만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못 본사람을 여기서 다 채우나 싶었다.


사람에 치이고 가격에 몇 번 놀래곤, 타운 한가운데 황소 모형이 구경거리 전부인가 싶은 이 쬐깐한 관광촌 다운타운 구경에 흥미를 잃었다.


그래도 젝슨홀이 품고 있는 테턴은 요상했다.




<덧붙임>

우린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용케도 기적을 일궈냈다.


호텔예약대행 사이트 백날 뒤적거려 봐야 답 없고...


구글지도 열고, 지도에서 찾아지는 호텔을 구글로 검색한 후, 호텔 사이트에 접속하여 직접 예약.

엘크 컨트리 인 1박에 47만 원가량.

젝슨홀 다운타운 안에 있으며, 미국에서 내내 묵었던 다른 호텔들과 비슷한 사양.


아이디어는 남편, 예약은 블링줌마.

우린 함께하면 대부분은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덤엔더머지만, 간헐적으로 아주 가끔, 협동하여 반짝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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