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ument Valley

Canyons

by blingzoomma

잠결이었지만 우리보다 상대방이 더욱 놀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시차에 적응을 하지 못한 우린 이튿날도 늦잠을 자고 있었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도, 우리가 자고 있는 모습에 놀라 달아나는 상대방의 기척에도 도저히 눈이 떠지지 않았다.


우리 방에 침입자가 있었다는 사실보다 더욱 놀라 벌떡 일어나게 만든 건 오전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그날 우리의 계획은 우리가 숙박한 그랜드캐년빌리지에서 4시간 거리의 모뉴먼트밸리를 경유해 페이지로 가는 것이었다. 애리조나주와 유타주의 경계에 있는 모뉴먼트밸리의 시간은 그랜드캐년보다 한 시간이 빠르고, 늦어도 2시 전에 모뉴먼트밸리에 도착해야 입장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9시에 출발해야 하는데 10시에 기상한 거다.


모뉴먼트밸리를 생략하고 쉬엄쉬엄 곧장 페이지로 갈 것이냐, 아니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냐의 안건으로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누가 그라든데, 이 캐년 저 캐년 다 돌아다녀봐도 이년이나 저년이나 똑같은 년이란다. 입장시간 맞추기 힘들 것 같은데 모뉴먼트밸리는 고마 빼까?" 여전히 비몽사몽인 정신은 오직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축 늘어진 몸에 샤워기로 물을 뿌리며 겨우 목소리를 내어 모기처럼 말했다.


"헐, 포기가 너무 빠른 거 아니가?" 남편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며 숙소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우리의 소지품을 캐리어에 주어 담으며 힘없이 대꾸했다.


"그럼 우짜꼬? 저 똥차 타고 날아갈끼가!"

"모리 긋다. 우찌 되긋지"


우리 대화의 흐름에 확신은 없었지만 기민하지 못한 정신으로, 비누거품은 헹궈졌는지 의심스러운 샤워를 하고, 본능적으로 움직이며 11시가 되기 전 잠에서 깬 지 한 시간도 안되어 체크아웃을 했다.


2시간이나 늦어진 일정을 도로에서 만회해 보리라 헛된 희망을 품고선 우린 목적지를 향해 밟아, 밟아를 외치며 그랜드캐년국립공원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주유소도 거침없이 지나치면서 말이다. 검색해 본 다음 주유소는 한 시간 거리였는데, 말이 한 시간이지 130km 떨어져 있다.


고작 하루 같이 다녀본 똥 쉐보레는 기름을 쭉쭉 들이마시는 하마이기도 했다. "우리 똥쉐마 기름게이지 떨어지는 거 보이 밥부터 미야긋다."

만장일치로 "Let's go back."

그랜드캐년으로 돌아가기 위한 U턴 포인트는 저 지평선 끝자락에 있는 건지, 가도 가도 보이지 않았다.

하필 시간에 맞춰 가야 하는 날, 늦잠까지 잔 날, 도와주는 게 하나 없다.


미국에서 로드트립을 하며 느낀 점 중 하나, 쭉 뻗은 도로, 되돌아가는 길은 험하진 않아도 매우 멀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섰든, 목적지를 놓쳤든, 이유가 뭐든 돌아가야 할 일을 절대로 만들면 안 된다.


한참을 돌아 그랜드캐년으로 되돌아가면서도 어떻게든 두시 전에 모뉴먼트벨리에 도착하고야 말겠다, 집착하며 네비에 뜨는 도착 예정시간을 1분이라도 시간을 줄이려고 악착을 떨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서두르지 말기로 한 시점이...


주유소 옆 식당에서 새어 나오는 음식냄새에 우리가 먹은 게 없다는 걸 깨닫고 갑자기 식욕이 터졌을 때였을까?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은 진리다. 가는 길에 있던 인디언마켓에 호기심이 생겼을 때?


우린 말하지 않았어도 한 마음 한 뜻으로 한가해졌다.

제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바쁘게 지나가야 하는 그 모든 곳 역시 우리 여행의 일부였다.

우린 식사를 하고 아이쇼핑도 했으며 뷰포인트가 나올 때마다 차를 세우고 맘에 들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여행자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무조건 아름다운 것일까?

아니면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까?


붉은색 사암 벽돌을 쌓아서 산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생긴 우뚝 선 기암괴석들, 흙먼지 날리는 척박한 풍경이 지구 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런 곳이 있다.

"에게, 여가 거가?" 사진작가의 능력에 속아 비행기 타고 멀리까지 가서 그분의 예술을 사기라 질타하며 원망하게 만드는 곳.


모뉴먼트밸리는 반대였다. 어차피 입장은 날 샜고, 뻥 뚫린 도로에서 너도나도 인스타 올리는 사진 한 장 건지자 해서 갔다가 실물에 넋이 나가버렸다. 원근감을 표현하기 어려운 사진에다 그 휑한 풍경의 멋을 담아내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입장시간이 한 참 지난 그때, 모뉴먼트벨리 입구엔 입장을 불허한다는 바가 세워져 있었다. 그 안이 간절하게 궁금한 나에겐 고작 그 무릎높이의 바가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철벽, 규범, 거부 그런 것이어서 괜한 반발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만히 그 바를 내려보다가 깡충 뛰어넘었다. "쳇."

내 그릇으로 할 수 있는 반항은 딱 거기까지였다.


" 미국이 아침에 못 일어나는 타임존인 걸 알았으면 요따 숙소를 잡았을 낀데. 더 뷰 호텔 전경이 겁니 멋있다던데, 저 안은 화성 같을 것 같제." 떠나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못 드갈 거 알면서도 요까지 온 게 얼마나 다행이고, 좋게 생각해라. 근데 아침에 누고?"


"아마도 청소하시는 분 이긋지."

'그래, 여기서 보내지 못한 시간이 다른 멋진 곳을 만나게 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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