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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정 May 10. 2022

경일 세탁소 아저씨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온지 3년여를 채웠다. 낯섦도 이젠 꽤 많이 적응하여 과일은 어느 마트가 맛있고, 야채는 어느 마트가 싱싱한지, 어디서 버스를 타야 원하는 곳에 도달하는지, 언제 가면 막 구운 따뜻한 빵이 나오는지 정도는 알게 되었지만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이사 온 곳은 재개발 지역이었고 그곳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였기에 아파트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오래된 상가와 재래시장이 허름했는데 '경일 세탁소'는 그런 낯선 시장의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경일 세탁소. 재래시장 한편에 자리한 낡았지만 깨끗한 세탁소. 겨울의 끝에 세탁이 필요한 옷들을 껴안은 나는 그곳에서 허스키한 목소리의 마음 좋은 세탁소 사장님을 처음 만났다.

 

경일 세탁소는 동네에 자리한 신식 체인점 크린토피아에 비하면 낡은 듯 보이고 수기로 작성하는 시스템이 허술해 보이기도 했지만, 체인점 세탁소에서 바랄 수 없는 깨끗함과 맞춤한 칼주름, 가끔은 떨어질 위기에 처한 단추를 꽁꽁 묶어 다시금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등의 서비스가 무척 훌륭했다. 투박하지만 정감 어린 그런 점이 나는 좋았다. 가끔은 옷이 바뀌었네, 옷이 없네 있네 사장님께 쏘아붙인 후 미안한 마음에 '화이바미니'를 사들고 찾아가면 나처럼 그렇게 지르는 사람이 뒤끝도 없다며 괜찮다고 웃으시던 사장님이 점점 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나를 '이쁜 아줌마'라고 부르셨는데 공교롭게도 아저씨와 나는 젊은 시절 종사했던 직업군이 똑같았다! 나는 디자이너였고 아저씨의 젊은 시절 직업은 봉제공장 사장님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난 아저씨의 경험담, 즉 봉제공장 하다 부도 맞은 이야기, 돈 많이 벌었던 논노 패션 그 시절 이야기, 주식으로 망한 이야기, 아들들을 힘들게 키워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정이 들고 있었다. 내심 의리파였던 나는 경일 세탁소만 이용했고 아저씨가 안 계시거나 사정이 생겨 문을 닫으면 다시 열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작년 겨울이 끝날 무렵 겨울옷을 들고 찾아간 세탁소에는 작은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사정이 있어 당분간 문을 닫겠다는 메모에,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라 아저씨가 코로나에 걸리셨나? 얼른 나으셔야 할 텐데. 하고는 뒤돌아서 잊고 살았다.


몇 주가 지나, 또다시 찾아가 본 세탁소. 이번에는 메모가 달리 붙어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두어 달 문을 닫겠다는 메모에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세탁소에 적혀있는 사장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니 사장님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반갑게 받아주셨다. ‘저 맡길 거 많은데요~’ 하니, 간 이식 수술을 하셨다고 한다. 큰 수술을 했고 이제 다 나았다며 다음 주 3월 초부터 가게문을 열겠노라며 그때 다시 오라고 당부를 하셨다. 큰 수술을 하셨으니 건강 잘 챙기시라고, 언제라도 나오시면 찾아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는데 마음 한편이 내심 안 좋았다. 당장이라도 세탁소로 오시고 싶어 하는 아저씨 마음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호탕하게 장담하셨던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어도 아저씨는 가게 문을 열지 않으셨다. 나는 나의 겨울 옷들을 세탁하지 않은 채, 장롱 깊은 곳에 넣어두었다.


그렇게 4월이 지나 5월이 되었다. 이상하게.. 나는 주변을 다닐 때 일부러 길을 돌아 가게 앞을 기웃거렸지만 지난번과 같이 직접 전화를 하지는 못했다. 왠지 나의 예상이 맞을 것만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아저씨가 일상으로 안 돌아오실 이유는 없었다. 못 돌아오시는 이유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드니…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오늘, 나의 핸드폰으로 낯선 문자가 도착했다. 경일 세탁소 아저씨사장님의 부고 소식이었다

아버지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번호로, 상주인 아들분께서 문자를 보내신 것이다. 문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일상으로 돌아오시고 싶었던 아저씨가 생각나서.

결국 못 버티셨구나.. 참.. 사는 건 별 것 없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허망하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고작 몇 번 본 동네 세탁소 사장님이셨는데… 내가 원래 그런 성격도 아니고… 왜 이렇게까지 마음이 슬플까 생각하면.. 아저씨가 따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저씨의 따뜻함, 인간적인 모습에 스며들었던 것이고, 정이 들었던 것이다. 따뜻함을 가지고 산다는 건 참으로 축복받은 일이다. 주변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사람들을 곁에 두는 능력이기 때문에... 그런 아저씨였으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 생각한다.


아저씨.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쉬시길 바라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저씨의 따뜻한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사를 가고, 나이가 들어도 2022년 장미가 필 무렵의 응암동. 지금 이 시절을 생각하면 경일 세탁소와 아저씨가 생각날 거예요. 감사했어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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