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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Sep 02. 2016

공들이지 않는 관계

복권같은 만남

#.1

혼자하는 것들이 어색하지 않을만큼 서른넷의 나는 철저히 내게 의존하는 중이다. 솔로인만큼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지인들로부터 들어오는 소개팅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직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좋다하더라도 이성을 만날 수 있는 폭과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나이라는 현실에 순응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시간과 삶을 공유한다. 처음 만나는 남자가 내 앞에 앉아서 자신을 어필한다.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음식, 취미, 그리고 자신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집중한척 하지만 사실 대부분 지루하다. 차라리 책이나 영화를 봤다면 좀 더 유익한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무엇때문에 여기에 앉아서 어떤 사람인지도 모를, 그리고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사람의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쉽지않구나.


다섯번까지는 만나 줄 수 있어요

소개팅을 했던 한 남자가 내게 말한다. 여자들은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라며. 남자는 처음 만나보면 이 여자를 계속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선단다. 그러면서 지난번에 다섯번까지 만났었던 여자에게 사귀자고 했더니, 아직 잘 모르겠다며 더 만나보자고 했단다. 화가 난 이 남자는 여자와 연락을 끊었다. 내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의도는 뭘까. 참 매너없고 어리다는 생각이들지만, 세상에는 정말 별놈들이 다 있으니까. 어쩌면 나는 소개팅과 정말 맞지 않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소개팅 남하고는 세번까지 만나서 세번째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될지 말지 결정한다고. 겨우 세번보고 사람을 알아? 정말 정이 가지 않는 소개팅이라는 너.


하지만 난 앞으로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날 것 같다. 남자가 좋건 싫건, 상처를 받던 말던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경험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니까. 깎일대로 깎이고 흠집날대로 흠집이난 사람에게선 삶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생긴다. 나이들 수록 우리는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판단력이 빠르고 얻을것 없는 상황에서 감정소모를 하지 않는다. 포기가 빠르고 금방 지친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만남은 복권같은 게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공들이지 않는 관계. 연애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상대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서 가슴속 한편에 복권 한 장을 품고 있는 것이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즉석복권을, 그나마도 참을성이 있다 싶으면 일주일을 기다려야하는 로또를 산다. 씁쓸하지만, 더 이상의 기다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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