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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Oct 08. 2021

청첩장을 돌리면서

결혼식 D-1일까지의 생각들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왜 자신의 일에 관해서는 쿨하지 못한 걸까. 아무리 강화유리 같은 멘탈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기스가 나는 건 꽤 불쾌한 일이다.


결혼으로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 한다. 그 말에 수십 번 고개를 더 끄덕여본다. 어차피 결혼식 규모를 축소해 스몰웨딩으로 준비를 했고, 억지로 오는 사람은 절대 없게 하자는 마음으로 강릉에서 결혼식을 진행하는 내가,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모순일까.


청첩장에도 ‘분명 가족과 친지만 모시고’라는 말을 써놓긴 했지만, ‘그래도 내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와주지 않을까?’라고 기대를 했던 걸까. 아닌데, 어차피 그럴 마음이었다면 죽어도 서울에서 식을 올린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은 이다지도 혼란스러울까.


인간관계는 결혼식을 치른 후가 아닌, 청첩장을 돌릴 때부터 정리가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만나서 식사라도 대접하면서 청첩장을 돌리는 것이 도리이긴 하나, 시국이 시국인만큼 마음 편히 누군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회사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모바일 청첩장으로 결혼 소식을 알렸다.


'어디까지 청첩장을 돌려야 할까...'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던 난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가지고 머리 아픈 게 싫었다. 그래서 그의 결혼식에 참석을 했더라도 오랫동안 안부조차 묻고 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을 참이었다.


그런데 누구는 하고 누구는 하지 않고 하는 게 더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일찍이 유부녀가 된 친구는 "무조건 모두 다 연락을 하라"라고 조언을 했다. 그래, 그래도 소식은 알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축의금을 줬거나 결혼식에 참석을 했던 사람들은 알리자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안녕, 정말 오랜만이지. 잘 지내?"

"응~ OO아, 잘 지내고 있지?"

"나 결혼해"

"진짜? 축하해"

"연락도 안 하다가 이런 소식을 뜬금없이 알리게 되네."

"청첩장 보내줘. 너무 축하해"

"고마워 골치 아팠어."

"코로나 터지고 더 골치라고 하더라. 스트레스받지 말고 몸 아프지 않게 컨디션 조절 잘해."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인데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따뜻했다. 어릴 때 왜 더 친하게 지내지 못했을까 생각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네가 결혼식 하니까 걷어들이려고 연락을 하는구나'라는 느낌으로 내 메시지를 응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음의 상처가 된 것은 지난날 바쁜 일을 내팽게치고서 그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었지만, 돌아오는 건 "가고 싶은 데 너무 멀어서 못 가겠다"라는 말이었다. 물론 올 수 있는 여건이 못 되는 친구들도 있었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던가, 아이가 너무 어려 돌봐야 된다거나, 그날 다른 일정이 있다던가...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서운한  어쩔 수 없지만, 생각해보면 요즘 같은 시기에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교통도 불편한  곳을 선택했을  이미 예상했던 일이 아닌가.


학교 친구들도, 사회에서 만난 애들도, 다 시집가고 만혼에 마지막 주자가 되었다. 늦게 결혼한 만큼 더 성숙하고 내 소신이 담긴 결혼식을 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고 싶은 걸 할 때는 몇 가지 정도는 양보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결혼이 며칠 안 남으니 마음이 좀 심란하다. 이기적으로 변하면서 옹졸해지는 것 같다. 왜 이리 못난이 모드가 된 건지. 어떤 상황에 대해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쉽지 않다.



*순간의 감정으로 글을 쓰다가 저장해 두고 며칠이 지난 다음 다시 들여다보면  이리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별것도 아닌 걸로 고민하고 기분 상하고.  성숙한 인간이라 그런지 하루에도 수십  마음이 변한다. 가끔  글을 다시 읽는  힘겨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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