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
살면서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온다.
깊게 파고들면 들어갈수록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말이다.
안 그래도 할 일도 많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넘쳐나는데 굳이 깊숙이 고여서 썩어가는 물을 끄집어낼 필요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끝내 그것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면, 정말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들어 부쩍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많고 다양한 방식의 인내를 요한다.
화가 나면 꼭지가 도는 남자는 상상 그 이상으로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다 귀담아 들었다간 아마도 화병으로 제명에 살지 못했을 것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내공을 쌓아간다. 쉽지 않다.
불쌍해 보이는 게 싫어서 때론 쿨한 척한다. 그러다가 가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남편은 결혼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물건이 늘어나는 것도, 피곤한 것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애초에 피하자는 그 사람은 나에게 한마디 의논도 없이 날 딩크족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 때문에 그는 일상적인 생활도 못할 것이다. 오만 신경이 아기에게 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회사를 못 다닐 만큼 예민해지리라.
그의 성격을 알기에, 나도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친구처럼 재미있게 살자고 했지만, 한 번씩 신경이 가시처럼 솟구칠 때면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난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에 식물과 동물, 종이책, 예쁜 옷을 좋아한다. 물건이 늘어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과는 상극이다. 남편은 날 고치려 한다. 언제나 자기의 의견만 주장한다.
다툼이 있을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네 물건들 때문에 공황장애 걸릴 것 같아"다. 다 가져다 버리고 싶다는 말만 수십 번 하다가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정말 가져다 버리는 시늉을 한다. 최근에는 옷장의 옷을 끄집어 내 버린다고 하기에 어쩌나 가만히 있어봤다. 꺼낸 옷은 옷방에 그대로 내동댕이 쳐졌고, 며칠이 지난 후에도 그대로 있다. 사과는 없었다. 사과할 마음조차 없는 것 같았다.
옷이 무슨 죈가. 널브러진 옷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좀 이해해 주면 안 되나 싶었다. 그런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타협이나 대화도 싫어지는 것 같다. 10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를 대여섯 장 가져와 옷장에 있는 옷을 쓸어다가 다 넣어 버렸다. 더는 똑같은 레퍼토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옷장을 다 비우고 푸디와 산책에 나선다. 털을 잘라주고 목욕까지 시켰더니 몸이 가벼운지 잘도 걷는다. 푸디가 걷는 모습만 봐도 난 기분이 좋아진다. 하얗고 통통하고 보드라운 털을 가진 네 살 강아지가 킁킁대며 풀숲을 탐색한다. 네가 있어 이미 충분하다 생각했다.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
리틀포레스트를 보면서 공감했던 말인데, 침대에 누워 있으면 가만히 내 몸에 등을 대고 자리를 잡는 그 녀석도 내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따뜻함이 느껴진다. 가만히 천장을 보고 누웠는데도, 작은 몸에서 나오는 온기는 충분한 위로가 된다. 어쭙잖은 위로보다 차라리 아무런 말이 없어서 오히려 더 편안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