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흘러버린다
흐른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이라고 했던 최재천 교수의 추천사가 떠오른다. 오늘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인간이 파도의 움직임을 알 수 없듯이. 그저 흐르는 대로 삶을 맡기면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을까?
여름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지친다.
푸디의 아침 산책시간이 빨라졌다. 아침에 원고마감을 할 일이 없으면 7시에서 8시에는 산책에 나간다. 그런데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하늘의 허락도 받아야 한다. 비가 오면, 조금은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하루종일 내릴 기세라면, 조금은 덜 내리는 것 같을 때 산책에 나선다. 하늘의 눈치를 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쳤던 비도, 산책만 나가면 폭우처럼 쏟아진다. 그러니 난 어제도 예측에 실패했다. 푸디는 산책에 나선다고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양반걸음을 하고 나와서는 이리저리 킁킁대느라 오줌을 누는데 10분이 걸렸다. 구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나는 혼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다 걱정은 현실로 다가와 빗방울이 한 방울 씩 내 얼굴을 스치고 떨어졌다. 한 가지 일이 더 남아 있는데... 걱정하고 있는데, 푸디가 내 마음을 읽은 것인지, 본인도 빗방울을 맞아 위험을 감지한 것인지 큰일을 보기 시작했다. 푸디는 물 자체를 무서워한다. 비라고 다르지 않다. 빨리 해결해 줘서 고마워 푸디.
나는 얼른 봉투에 강아지의 배설물을 담고 푸디를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두 방울이었던 빗방울이 아주 세차게 땅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야 비를 좀 맞아도 상관없지만, 목욕한 지 하루밖에 안 된 푸디에게 비를 맞게 할 순 없었다. 푸디를 안고 달리는데 어디서 이런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건지 달리면서 웃음이 나왔다. 누가 이렇게 웃으면서 뛰는 나를 본다면 정신이상자로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떤가, 그렇게 보든 말든 지금은 100미터 달리기를 15초에 뛰었던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그냥 달리고 또 달렸다.
사실 푸디를 안고 뛰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13kg인 푸디를 안고 20미터만 뛰어도 숨이 차고 팔은 끊어질 듯 아파온다. 이런 연약한 징징거림을 어쩌면 좋을까 싶지만, 운동이라고는 산책밖에 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만큼이라도 체력이 남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어쨌든, 푸디를 안전하게(비를 얼마 맞게 하지도 않고) 아파트로 데리고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나는 젖은 생쥐꼴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 푸디의 털은 뽀송뽀송했다. 무사히 아침 산책을 끝낸 것에 대한 기쁨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살짝 젖은 푸디의 털은 드라이기로 푸디를 말리고 푸디가 좋아하는 소파에 올려줬다. 체력이 저질인 강아지는 그새 새근새근 잠이든다. 축축해진 나를 돌보기 위해 욕실로 향한다. 이제부턴 내 시간이다.
씻고 나오니 상쾌한 느낌이 든다. 가끔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생각해보곤 한다.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샤워하는 시간이라고 답하고 싶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 몸도 마음도 상쾌해지는 시간. 이런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