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줘
날씨가 무덥다.
우리 뚱보 강아지는 여름철에 유독 힘겨워하는 것 같다.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나오는 게 푸디에게는 하루 일과 중 꽤나 즐거운 일에 속할 텐데 요즘엔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산책 가자는 말을 곧잘 알아듣고 방방 뛰던 발랄함은 온 데 간데없고, 고개만 살짝 들어 귀찮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강아지에게도 이 여름은 너무 혹독하겠구나. 하루 두 번의 산책 시간을 조절해 본다. 아침 산책은 6시에서 8시까지, 되도록이면 빨리 끝내고 저녁 산책은 아스팔트의 열기가 가신 9시에서 10시에 하기로 한다.
아침 일찍 산책에 나오니,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여름이라도 새벽공기는 상쾌하다. 해가 뜨고 있는 시간에 푸디와 아침 산책을 하는 건 어쩌면 행복인 것도 같다. 미래는 알 수 없고, 누구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것은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말은, 이 불안을 견디기 위함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실외배변을 위해 무더위에도 꼭 밖에 나와서 볼일을 봐야 하는 푸디는 장소 선택도 꽤 까다롭다. 자신만의 루틴으로 한참을 킁킁거리다가도 맘에 들지 않으면 쉽게 배출하지 않는다. 그러니 온 힘을 끌어모아 킁킁거리며 걷다가 볼일이 끝나면 걷는데 흥미를 잃는다. 특히 이런 혹독한 여름을 푸디는 즐길 마음이 없어 보인다. 볼일이 끝난 푸디는 길가에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버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런 푸디를 보고, "안아달라는 거네, 자꾸 안아주니까 저러는 거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무작정 푸디를 일으켜 세워 걸으라고 재촉할 수는 없다. 수술 전에도 그러다가 다리가 악화되어 병원에 가게 되었으니까. 강아지가 걷지 않으려 하는 데는 모두 이유가 있다. 말 못 하는 아이라, 몸으로 다리가 아프다고 표현을 하는 것. 또 아프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나서 이제는 무리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산책을 할 때 유모차를 가지고 나간다. 무더운 여름이 지날 때까지만 그렇게 해보기로. 선선한 가을이 오면 조금이라도 더 걷고 튼튼해지길 바라면서, 그때는 유모차를 가지고 나가지 않아도 푸디가 즐겁게 산책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산책을 하면서 몰티즈를 안고 걷고 있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푸디가 탄 유모차를 한참 바라보더니 내게 말을 건다.
"이런 유모차는 가격이 얼마예요? 아이가 편하게 보이네"
몰티즈는 노령견인 것 같았다. 산책을 좋아하는데 나오면 자꾸 안아달라고 한다는 아이는 한쪽 다리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혹시 동물병원 어디로 다녀요? ㅇㅇ 병원은 절대 가지 말아요. 내가 경험자로서 말해주는 거예요."
아주머니는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같은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으로, 나는 아주머니의 이야기에 기본적으로 공감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 개가 자꾸 발바닥을 핥아서 습진에 걸렸어요.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이것저것 다 감아 봤는데, 다 풀어버리고 발을 핥는 거야. 내가 그러면 안 됐는데, 잠깐 고무줄을 묶어놨던 게 괴사까지 올 줄 알았겠어..."
아주머니의 표정은 참담해 보였다. 한 손에는 자연치유에 관한 책이 들려있었다.
"내가 병원도 선택을 잘 못했어. 처음에 입원비로 정말 돈 많이 깨졌어요. 그래도 나을 수 있다면야 내가 뭘 못하겠어요. 근데 어느 날, 수의사가 애 상태를 보더니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건 아니잖아... 집에서 이것저것 찾아가며 좋다는 건 다 해봤어요. 그랬더니 이것 봐요."
아주머니는 강아지를 내려놓았다. 귀여운 몰티즈는 조금 불편해 보였지만 꼬리를 흔들며 잘 걸어 다녔다. 놀란 내 가슴도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마음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아주머니의 정성에 하늘이 도왔나 봐요."
"그때 절단 했으면 어쩔 뻔했어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까 우리 애도 더 좋아질 거예요."
가슴이 아렸다.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 반려인들에게는 있다. 어쩌면 사람보다 더 큰 사랑을 주고 심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존재가 반려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던 사람도 한번 관계가 어긋나면 추악한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 바닥을 보고 난 후에 드는 생각은, 너무 가깝게도 멀게도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 마음속의 중립이다. 기대하지 말고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처럼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것. 사람과의 상처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때론 내가 보호해줘야 할 작은 존재다.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가볍게 목인사를 하고 아주머니와는 헤어졌다.
나는 몰티즈가 아주머니와 아주 행복하게 오래오래 지내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