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미어지는
슬픈, 꿈을 꿨다.
너무나도 슬픈 꿈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나는 아주 서럽게 울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였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일어나서 두 눈가에 촉촉하게 고인 눈물을 닦아내느라 참 많이도 당황했었다. 왜 이런 꿈을 꾼 걸까. 스스로 가슴을 토닥이며 양손으로 나를 감쌌다.
괜찮아, 꿈일 뿐이잖아.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허해진 마음은 탄성이 없는 오래되고 낡은 고무줄처럼 쉽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좋은 일이 생길 거라 그런 꿈을 꾼 게 아니냐며 위로했지만, 하루를 보내고 이 자리에 앉은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가끔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단순하지 못한 내가 싫을 때가 있다.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고, 또다시 생각에 빠져서 모진 싸움을 하느라 잠 못 이루는 밤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사실은 나를 또 지치게 한다.
'더는 시간낭비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제삼자에게 들었다. 내 인생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 당사자를 흔들어 놓는다. 주변 인물이 아닌, 나를 전혀 모르는 그런 이의 이야기가 때론 더 현실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우리 나이 때에 정말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는 것 같다'는 친구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이 신념이고 무엇이 가치인지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이 아니겠지. 일반적이지 않은 인생을 사는 것은.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일들에 아무렇지 않게 웃고, 또 그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어차피 인생은 본인의 몫이니까. 어떤 가치관을 가지든 그건 자신의 마음이다.
순간을 즐기는 일.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도, 미래도 중요하지 않아. '퀘 세라세라'를 외치며 살았던 30대 초반. 나는 그냥 나름대로 남들이 살지 않는 내 인생을 내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가치였고 신념이었다.
적당한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을 해야 돼.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조급해질 때마다 미스는 초라해진다. 누구나 다 맞아야 하는 필수예방접종을 혼자 맞지 않고 버팅기는 사람처럼 말이다. 문제는 생각이 자꾸 바뀐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겁쟁이가 되어간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결론짓는다. 만남에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생각한 게 엊그제 같은데, 아마도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간에 의미를 뒀던 것 같아 혼란스럽다.
그래도 상처는 주지 마.
선배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연다. 누군가 만나서 상처 주면 자신에게 똑같이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사랑을 하는 데 있어,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닌 듯하다.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이미,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 상처받을 각오를 하고 시작하는 것이 연애 아니던가. 생각해보면 서로 좋아서 만난 건데, 나쁜 놈이 어디 있고 나쁜 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저, 그 시절에 함께해준 기억으로 남아 오늘을 혹은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남자든 여자든 결혼은 '내가 상대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마음은 지우개로 다 지우고, 희생을 희생이라 여기지 않아야 할 것. 그 전에 결혼은 사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