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남은 기억의 빚
자, 널 위해 특별히 가져온 거야.
그 아이는 가방에서 큰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비닐봉지를 개봉하자 귤과 떡, 과자 등 각종 먹을 것이 잔뜩 들어있었다. 어머니가 손수 싸준 거라며 이것저것 내게 건네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사람들도 많은 카페에서, 마치 할아버지처럼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내며 온갖 먹을 것을 꺼내는 것이 꼭 내가 그의 손녀가 된 기분이다. 무심하게 비닐봉지에 담아온 것이라고 해도, 그 아이가 가져온 것들은 꽤나 맛있다.
이런 남자 없을 거다. 넌 나 놓치면 후회해.
뭔가 촌스럽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그 아이를 난 또 기억해내고 말았다. 언제든 내 마음속에 작은 빈틈이 생기면 그는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어젯밤 꿈에 그 아이가 왔다.
내 모든 걸 이해해 주겠다는 표정으로 먹을 것을 내밀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거봐 내가 힘들 거라고 했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연애에 대해서는 매우 둔감한 스타일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니, 나에게 맞춰주세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러면 상대도 내게 똑같이 해 줄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상대는 내가 나를 강력하게 어필하지 않을수록 더 자기 자신의 뜻대로 하길 바랐다. 그래서 결국 나라는 사람은 없어지고 상대의 의견만이 남아 서로 맞춰가는 연애가 아닌, 누군가에게 이끌려가는 연애를 하게 되었다.
문제는, 꼭 나중에 발생한다. 그냥 그대로 계속 이끌려가면 괜찮은데 상대가 어느 정도 내 사람이 되었다 싶으면 그의 그런 독단적인 모습이 싫었다. 상대도 내게 할 말은 있으리라.
독단적이기보다는 항상 의견을 물어봤지만, 어느 정도 일치한다 싶으면 나는 늘 '응 맞아', '그래'라고 대답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 나의 의견은 불필요한 것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십 대는 정말 꽃다운 나이었다.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만난 남자들은 언제나 다시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냥 그게 이십 대의 특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게 특권이었는지도 몰랐을 때였지만, 나는 둔감하게 주변 친구들이 모두 결혼한 후에도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평생 혼자 살거나, 정 안되면 누구라도 나를 좋아해 주겠지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에 이어 친한 동생들도 하나 둘 결혼을 하고 나는 30대 후반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결혼을 하게 되겠지, 가깝든 멀든.
나는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다. 그래도 꿈에 가끔 그 아이가 나타나는 날이면, 지난날 자신의 모든 것을 퍼줄 것처럼 따뜻한 눈빛이 생각이 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