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요조의 책을 읽었다.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처음엔 무슨 책 제목이 그래? 하고 별생각 없이 책장을 넘겼다.
그녀가 읽은 책들에 관한 소개와 감상, 자신의 일상과 덧붙여 책을 말했다.
그러고 보니, 눈이 아닌 것은 마음이었구나...
관심 있게 들여다보기 전에는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없듯이 왜 이런 책 제목을 붙였는지도 잠깐만 생각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세상일에, 사물에, 주변인에 무신경한지 모르겠다.
그녀는 매일매일 아무 일도 없는데, 매일매일 우울하다는 것이 기가 막혀서 글을 쓴단다.
그 말이 꼭 내 이야기 같았다. 잘 살지만, 그냥 우울하다는 것은 내 존재의 한편이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글을 쓰는 행위가 그렇다. 뭔가 생각을 정리하면서 끄적이고 있으면 갑자기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내 주변으로 보호막이 쳐진다. 아무도 나를 해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 이렇게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는 시간이다.
사랑은 언젠가 식고, 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삶이 공평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 짧은 문구가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 공평하지 않다고, 손해 보는 삶을 살고 있다며 누군가를 괴롭히는 피해망상증 환자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리 지르거나 화내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만히 토라지는 일뿐이다. 소리 내서 짖으면 성대 수술을 해버린다는 협박을 해대는 못된 강아지 주인처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나는 늘 일탈을 꿈꾼다.
하지만, 나처럼 하는 방법도, 도와줄 매개체도 없는 평범한 유전자인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살 길을 찾는다.
내게 책을 읽는 행위는 일탈이다. 우스운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유일하게 내가 일탈할 수 있는 시간은 독서를 할 때다. 나는 이 사람도 되고 저 사람도 된다. 어느 날은 프랑스에 살고, 어느 날은 일본의 선술집에 간다.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 속에 들어가 살아보기도 하고, 참 못나게도 진퇴양난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희열을 느끼거나 안도하기도 한다. '내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구나'하면서 말이다.
어젯밤 막창을 주문해 혼술을 했다.
갑자기 광주에 있는 강아지(캔디) 생각이 나면서 펑펑 눈물이 나왔다.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 꼭 집에 내려가서 캔디랑 놀아주곤 했는데, 요즘은 쉽지 않았다. 무슨 일이 그렇게 많다고... 그러는 동안 캔디는 더 늙어버렸고, 기력이 쇠해졌다.
지난달에 집에 내려갔을 때 그렇게 좋아하던 육포도 마다했다. 잇몸이 부어 씹기조차 힘든 것 같았다. 배가 고프면 겨우 힘을 내 엄마가 밥그릇에 부어준 우유 정도만 핥아먹는 수준이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갑자기 캔디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캔디는 내가 왔다고 기운을 내서 내 옆에만 앉아있었다. 하루 종일 나는 캔디 옆에 있었다. 지난 6월에 집 근처의 공원으로 산책을 데리고 나갔는데, 그렇게 좋아하던 모습이 아른거려 휴대폰 사진첩을 열었다. 동영상을 재생해 캔디가 뛰는 모습을 봤다. 설마 이 모습을 다시 못 보는 것은 아닐까, 싶어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 수명이라도 줘서 강아지를 오래오래 곁에 두고 싶었다. 더 잘해주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
나는 아마 나중에 깊은 상처를 받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