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한 것은 그냥 담아둬

배려라는 것에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 줄 아니?

by 김효정


어떤 것에 집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어.



열정을 갖는다는 게 어쩌면 가장 많이 실망할 수 있는 일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모든 것이 그렇다.

일도, 사랑도 내 마음의 크기만 한 것을 돌려받을 수 없을 때 한없이 상처받고 절망한다.


홀로 자료를 찾고, 기획하고, 시안을 찾고, 촬영 구성을 하고, 스타일리스트를 섭외하고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촬영 조율을 하고... 매거진에 들어갈 한 컷을 찍기 위해 수많은 과정을 거치지만, 이건 모두 나 혼자만의 몫이다. 이렇게 욕심내 콘텐츠를 기획하는데 막상 촬영 당일날은 내 존재에 대해 부정하고 싶을 만큼 내가 하는 일에 기운이 빠지고 실망한다.



아마 이 세상의 모든 기획자나 에디터라면 내 말에 조금은 공감이 가지 않을까? 일하는 방식에 조금은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지면 촬영은 디자이너를 위한 재물 같은 거다. 그냥 찍어다 준대로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는 흔하지 않다. 이해한다. 작업하기 쉽게, 최대한 손이 덜 가게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작업물이 되는 책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사이가 좋은 경우는 드물다. 서로의 관점과 생각을 충분히 나눈 후에 촬영을 진행하는 것이 맞지만, 그런 일정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편집장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사보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분명하지 않고 몹쓸 집착과 화만 늘어나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피곤하게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이 많이 생겨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며칠 전 디자이너가 표지 촬영에 동행했다.

그런데 사진작가가 디자이너의 구미에만 맞게 사진을 찍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촬영 후 디자이너에게만 촬영 컷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이번만은 아니었다. 표지 촬영 때마다 그랬다. 사진작가는 디자이너에게만 자신이 촬영한 표지를 보여주면서 어떤 각도로 찍어야 할지 괜찮은지 몇 번이고 물었다. 잡지사에 다닐 때도 이런 황당한 경우는 없었다. '지금 다니는 곳의 시스템이 이렇구나...'라고 생각하며 몇 번이고 참고 참고 또 참았다.


만약 앞단의 준비(기획, 섭외, 콘셉트 잡기, 시안 찾기) 등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기분이 언짢지는 않았겠지... 내가 공들인 만큼, 더 애정을 가진 만큼 화는 몇십 배로 되돌아왔다.


열정을 버려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잘도 버리던데 왜 이 나이를 먹도록 이런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는 건지.


사실 내 작업물이라고 내놓기가 부끄러운 건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부리는 욕심인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살면서 모든 걸 짚고 넘어가기엔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서운한 것을 마음에 담아두면 쌓이고 쌓여서 나중엔 걷잡을 수 없게 돼.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에서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간관계를 잇는 것은 한 사람의 인내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호 간 평등한 관계는 있을 수 없다. 누구 하나가 많이 이해하고 져주는 것이 원만한 관계의 형성이 될 수 있다. 바뀌는 것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서운한 것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사진작가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일하면서 가장 기운 빠지는 순간이 언젠지 아세요? 전 어제 같은 순간이요. 정말 고심해서 기획하고 스타일리스트와 어떤 요리, 어떤 스타일로 구성할까 고민해서 맞추고 촬영 계획 짜고 했는데, 사진 찍으시는 분이 너무 디자이너만 신경 써서 사진을 찍으실 때요. 정말 일에 의욕이 없어져요. 디자이너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찍어야 하는 작가님 입장도 알지만, 촬영한 건 함께 공유하고 볼 수 있잖아요.


카카오톡으로 내 입장을 전달했다. 전혀 이런 생각을 못했었나 보다. 돌아오는 대답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본인도 서운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알고 있다. 사진작가는 작가대로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방향이 있겠지, 그걸 디자이너 입맛에만 맞추고 싶을까. 사실 회사생활이라는 것이 이렇게 복잡하다. 사진작가는 디자인팀 소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획실보다는 디자인팀에 속해있는 시간이 많다. 아무리 나와 취재를 함께 나가서 고생을 한다고 하더라도 디자인팀에게 맞춰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디자인팀의 장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팀의 장은 '사진을 왜 이렇게 찍었냐. 이렇게 밖에 못하냐'는 등의 다양한 압박을 넣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내가 일의 의욕이 떨어지는 것도. 사진작가에게 내 입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을 서로의 마음에 채찍을 대면서 또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들었나 싶기도 하다. 요즘 민감해진 날 보면서 생각한다. 진정하자고.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솔메이트 같았던 남자 친구도, 정말 많이 다름을.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남자 친구는 내가 서운한 것을 이야기하면 왜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내서 상황을 안 좋게 만드냐는 말을 한다. 아마도 난 말의 기술이 좀 부족한가 보다. 서운한 이야기를 꺼내서 좋아할 사람은 세상천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서운한 것을 숨긴 채 그냥 삭히거나 무뎌진다. 비록 이것이 나중에 화병이 되어서 돌아오더라도,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 자신을 죽여야 함을.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 어떤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은 상대의 눈치를 보면서 참아야 하는 것임을 나이를 먹으면서 깨닫게 된다. 좋은 말로 배려라는 것. 배려라는 말 뒤에는 수많은 인내가 필요함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써댔다. 배려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 채 그렇게 마구.



화를 참는다.

또 화를 낸다.

그리고 쓰면서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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