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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이별

헤어짐에 대한 단편

by 김효정
안녕


이란 말은 슬프지만

우리는 안녕이라는 말로 많은 이별을 한다.

만남이 좋은 건 헤어짐이 있기 때문이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히 헤어짐을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별을 한다. 오늘도 나는 두 번의 이별을 하고 홀로 돌아섰다. 짧은 만남 끝에 돌아온 헤어짐. '안녕'이라고 손을 흔들고 돌아서야 하는 시간은 길다면 길게, 짧다면 짧게 허전함을 남긴다.


연휴의 마지막 날, 돌아가야 하는 길은 분주한 아침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침부터 이 녀석이 내가 오늘 돌아가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침대 밑에서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낑낑댔다. 몇 차례의 칭얼댐에도 내가 반응이 없자 그 녀석은 한 번씩 짓기 시작했다.


‘제발 일어나서 나랑 놀아 주라, 너 오늘 서울로 훌쩍 떠나버리면 당분간 나랑은 얼굴도 마주할 수 없잖아.’라는 그런 느낌으로 목소리를 냈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인형처럼 귀여운 얼굴로 안아달라고 방방 뛰기 시작하는 그 녀석을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또 무겁게 짓눌렀다. 이번에 내려오면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꼭 산책을 데리고 나가야지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난 그러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날씨가 좋지 않았다. 때 아닌 비가 연휴 내내 내리는 바람에 넓은 들판에서 뛰는 그 녀석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꼭 산책 데리고 나가야지.


사람이 건 동물이 건 마음이 오간다면 눈빛만으로도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다. 녀석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엄마를 바라볼 때처럼 간절하다. 엄마가 필요한 아주 어린아이처럼, 이 녀석은 내가 하는 행동, 말, 심지어 눈빛까지 주시하고 있다가 집안에서 나만 졸랑졸랑 따라다닌다. 내가 보이지 않으면, 이 방 저 방 뒤지고 다니면서 나를 찾는다. 이런 녀석을 내가 어떻게 예뻐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의 첫 번째 이별은 사랑하는 우리 집 강아지, 캔디와의 작별이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얼마나 칭얼대고 애틋하게 나를 바라보던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이 아른아른하다. 이런 불편한 마음을 안고 서울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언제나 그러하듯 엄마가 동행한다. 오늘은 엄마가 대전까지 나를 데려다 주기로 하고, 전주에 들러 잠깐이라도 좋은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엄마는 운전하고 나는 엄마 옆에 앉아서 수다를 떤다. 엄마는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나는 이렇게 엄마와 함께 차 안에 있을 때 가장 솔직해진다. 스스럼없이 회사 이야기, 연애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를 비롯해 친구들에게나 하는 가벼운 이야기까지 모두 다 꺼낸다. 누구보다도 공감을 잘 해주는 사람이란 걸 알기에 나는 어떤 이야기든 끄집어내 엄마와 나눈다.


“캔디 너무 귀엽지”


캔디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엄마에게 보여주자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나는 강아지에게 안녕을 말하기 전 하는 행동이 있다. 바로 사진을 찍는 일. 나갈 채비를 하면 떠나는 것을 감지한 강아지가 내게 발을 올려 안아달라고 칭얼댄다. 그렇게 내게서 떨어지기를 싫어하는 캔디를 안고서 사진을 찍는다.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잘 지내라고.


“그래, 꼭 인형 같네.”


그러다 엄마는 또 무거운 이야기를 꺼낸다.


“너한테는 껌처럼 달라붙어 있잖아. 그런데 네가 없을 때 캔디는 엄마 옆에 오긴 하지만, 조금의 거리를 두고 앉아. 가만히 캔디를 보고 있으면, 불쌍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여. 얼마나 외로울까. 캔디도 외롭고 엄마도 외로워.”


“서로 위안이 되겠네.”


“나이 드는 건 슬픈 일이지. 그래, 그래서 캔디에게도 엄마에게도 네가 필요해.”


뜨겁고... 무거워지는 순간. 나는 또 이렇게 무너지고 만다.


그래도 엄마와의 대화는 참 좋구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전주에 도착했다. 관광지답게, 전주 한옥마을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공영주차장이 만차라 차 댈 곳을 찾아 헤매다 운 좋게 누군가의 집 앞에 잽싸게 주차를 하고, 엄마와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한옥마을을 걸었다.

예전에도 엄마와 함께 한옥마을에 놀러 왔는데, 그때 엄마에게 염색된 보라색 손수건을 사드렸었다. 올여름 예쁘다며 시도 때도 없이 그 손수건만 목에 두르고 다니던 게 생각이 나서, 예쁜 스카프를 사드리기로 마음먹고 정신없이 가게를 찾아 헤맸다. 나는 꽃 자수가 놔진 예쁜 색의 스카프를 엄마에게 선물하고, 엄마는 내게 대추나무로 만들었다는 작은 빗을 사줬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더 이상의 구경은 못하고 다시 대전으로 향한다.

겨우 맞춘 기차 시간. 엄마는 기차역에서 나를 배웅한다. 기차 안에서 네모난 창밖을 내다보니, 소녀처럼 해맑게 웃으며 날 향해 손을 흔든다.


안녕, 엄마...



나는 오늘 두 번째 이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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