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이 되어야 하는 이유

고작 공책 5권이 전부였는데...

by 김효정

초중고교 시절, 난 또래 친구들에 비해 운동을 잘했다. 체력검사에서는 늘 특급을 받았고, 체육 실기에선 언제나 A등급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중학교 때 난 친구들의 투표로 체육부장이 되었다. 그 시절 나는 부끄러움이 많았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체육시간에 반 아이들의 열을 맞추고, 큰 소리로 "차렷, 열중셧, 선생님께 경례"를 외쳤다. 여자가 체육부장 하면 안 된다는 법 있나?


뭘 안다고 그 시절 '체육부장'이라는 타이틀은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 더 잘하고 싶었고, 남자 친구들에게 조차 지고 싶지 않았다. 체육시간이 끝난 후에는 물을 마시기 위해 최고의 속력으로 달려야 했다. 세 개밖에 없는 수도꼭지를 쟁취하기 위한 속도전이었다. 그때도 난 제일 먼저 수돗가에 도착해 남자아이들의 놀라움을 사곤 했다. 조금 천천히 걷고, 양보했어도 좋았을 텐데 그때의 난, 바보처럼 그게 멋진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육상부였던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것인지, 교내 100m 달리기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남녀공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뛸 때면 많은 여자아이들이 나를 보며 환호했고, 나는 그런 상황이 싫지 않았다. 내 재능이 특별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하루는 체육선생님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멀리뛰기를 하라고 시켰다. 번호가 빠른 순서대로 아이들은 멀리서 달려와 발구름판을 밟고 메마른 모래사장을 날아올랐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고,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도움닫기를 하고 발구름판을 밟았다. 그리고 허공을 날아 모래 위로 착지.


"잠깐, 이쪽에서 기다려 볼래?"


체육선생님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친구들과 격리시켜 홀로 두었다. 모든 아이들의 멀리뛰기가 끝이 났을 때, 다시 한번 나에게 뛰어보라고 요청했다. 그리고는 내게 학교 대표로 육상대회에 나가볼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난 시에서 열리는 육상대회에서 '멀리뛰기'와 '100m 달리기' 2가지 종목의 학교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 100m 달리기에서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선수가 큰 키에 날렵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키가 작아서 육상에 적합한 신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기죽지 말자, 그냥 최선을 다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뛰었다. 이날 날 응원하러 오신 엄마는 내가 걸어가는 줄 알았다는 농으로 날 무안하게 만들었다. 달리기에서는 아쉽게도 3등을 했다. 그리고 오후에 있었던 멀리뛰기 시합은 내가 우승을 차지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비인기 종목이기도 했고,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도 학교에서는 1등을 차지한 나로 인해 경사였다.


결국 시 대표로 멀리뛰기에 출전하게 된 나는 여름 방학 동안 전국 체전을 위한 연습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체력을 다질만큼, 운동에 뜻을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꿈은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첫날은 멋모르고 연습 장소에 나갔다. 체육선생님은 나를 반기며, 스파르타식의 훈련을 시킬 거라고 정신교육을 했다. 혼란스러웠다. 누리단에서 떠나는 지리산 여행도 포기하고 온 선택이었다. 게다가 그늘이라고는 볼 수 없는 땡뼡에서 체력을 단련해야 하는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살이 초코파이처럼 까맣게 타버릴 것 같았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저 재능이 이끄는 대로 길을 걸었던 것뿐인데 그저 상황에 맞게 내 미래를 결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며칠간은 연습에 임했지만, 계속 의지 없이 받는 훈련은 의미가 없었다. 어렵게 체육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제 길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럼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지만, 그때 나는 확실하게 답하지도 못했다.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른이 되면 무언가는 되겠지' 싶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때에도 난 체육이라는 과목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난 육상 종목에 재능이 있는 한 아이에 불과 했고, 닦이지 않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원석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수많은 시간을 갈고 연마한 옥석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빛나는 재능을 봐주고 그 길을 걷게 하는 건 어른들의 몫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 내가 운동선수로의 진로를 택했다면 어땠을까? 모든 길이 그러하듯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졌을 게다. 재능을 담보로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일들이 그런 것처럼, 피나는 노력 끝에 좋은 운도 따르는 법이다.


나는 왜 그렇게 친구들을 이기고 싶었던 걸까. 왜 친구들 앞에서는 최고가 되고 싶다가 막상 최고들끼리 경쟁하는 곳에선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해 버린 걸까. 어떤 목적이나 이유도 없이 그저 단순하게 '잘'하고 싶었나 보다. 육상에서 단거리를 주종목으로 뛰던 내가, 한 번은 1000m도 1등이 너무 욕심이 났다. 그냥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 전력질주를 했는데, 이런 나를 보고 트랙에 서 있던 윤리 선생님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힘들어, 이제 그만해도 돼."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려갔던 것일까. 고작 1등의 상품은 공책 5권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숨이 끊어질 듯 달리면서 내가 얻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지고 싶지 않았던 쓸데없는 욕심을 지금도 가끔 부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특히 나는 최선을 다 했다고 느꼈던 일에 대한 인정이 없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가 않다. 마음이 꼬일 대로 꼬이는 날이면, 숨이 끊어질 듯이 달렸던 1000m 오래 달리기를 떠올린다. 오래 달리기는 그 본질상 천천히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는 게 최고다. 누군갈 이기려고 미친 듯이 뛰다 보면 지쳐서 완주조차 할 수 없거나, 완주를 하더라도 몸이 망가지고 만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왜 목숨을 거니?"


내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은 지금 이 일이 아니다. 일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서 우리들의 쓸데없는 감정노동은 시작된다. 당신의 가치를 회사에서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당신의 가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부모이거나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다른 부분으로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다. 조금 씁쓸한 이야기지만, 영업부가 아닌 이상 회사는 일을 잘한다고 인정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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