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그녀와의 시간

두 시간은 짧지만 행복을 빌어주기 충분하다

by 김효정

요즘따라 억지로 시간을 내서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이것은 비단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직장인으로 살면서 누군가에게 내 저녁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일에 치여있고, 피곤한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언니, 잘 지내고 있어요?"

오랜만에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는 늘 '잘 지내냐'는 말로 안부를 묻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온 연락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나를 잊지 않고 있었구나...' 언제 만나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난 덜컥 날을 잡아버렸다.

"다음 주 목요일 저녁 어때?"

후배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좋아요"라고 답했다.

일곱 시에 퇴근하는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일찍 만나기 위해 내가 그녀의 직장 근처로 가기로 했다. 성형외과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의 직장 근처엔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먹거리도 많았는데 그중 소곱창과 삼겹살 사이에서 수 없이 고민을 했지만, 결국엔 삼겹살로 메뉴를 정했다. '신논현 맛집'을 검색하며 발견한 '김일도'에서 우리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가볍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했던 지난날의 식성과는 다르게 난 언제부턴가 담백하지만 기름진 것이 좋아졌다. 남자들처럼 고깃집이라니...

신논현역 3번 출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그녀가 보인다. 언제 봐도 변치 않는 모습. 왜 젊은 시절 만났던 사람들은 언제 만나도 늙지 않는 걸까. 함께 늙어가기 때문인가. 단번에 서로를 알아본 우리는 눈으로 인사를 나누고 함께 고깃집으로 향했다. 고깃집은 맛집으로 소문나서인지 사람이 많았다. 고기 굽는 냄새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복잡하게 뒤엉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좀 조용한 곳이었어도 좋을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두툼한 고기 한 판이 자리에 세팅되는 걸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서로 SNS를 통해서만 소식을 주고받고 1년이 넘는 시간 보지 못했으니, 그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그녀는 내년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어떻게 결혼을 결심한 거야?"

"그냥 남자가 확 끌어당기니까, 그냥 정신없이 이끌리는 대로 가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녀는 전에 만났을 때 보다 안정된 것 같았다. 눈빛도 편안하고 건강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좋아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그녀가 이것저것 따지고 남자를 고르지 않아서였다. 왜 자신의 짝이 나타나지를 않는지에 대해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후배들이 많은데, 그녀는 그냥 자신의 것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곧 남편이 될 사람의 연봉, 지금까지 모아 온 돈, 그리고 부모님의 직업, 그리고 자신이 모아둔 돈의 금액을 언급하며, 앞으로 저축이나 생활비 계획까지 세세하게 이야기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결혼하기도 전인데 벌써 그녀가 알뜰한 주부가 된 듯해 기분이 이상했다.

"넌 잘할 것 같아"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짧은 치마에 높은 굽의 구두만 신던 그녀가 오늘은 긴 원피스에 단화를 신었다. 사랑은 사람을 이렇게도 변하게 만드는구나.

"긴치마의 매력을 알아버렸어요. 그런데 요새 너무 잘 먹고 다녀서인지 살이 많이 붙었어요."

"왜 그대로인데, 어디가 쪘다는 거야?"

그녀는 아랫배를 가리키며, 피식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고, 늘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남자가 더 쪄도 괜찮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맞아요."

또 한 번 우린 웃음을 터트렸다. 따지고 보면, 우린 성향이 많이 다른 스타일이었다. 다른 성향이지만 통할 수 있었던 것은, 둘 다 장녀인 데다가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세상 밖에 내던져진 돌멩이처럼 우린 보호막 없이 홀로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많았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는 것은 그랬다. 일을 쉬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게 일했지만, 손에 잡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특히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립해야 하는 사회인이라면 그 과정의 고난과 고됨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언니, 진짜 좁은 원룸에서만 생활하다가 방이 세 개인 집으로 가니까 너무 좋아요. 삶의 질이 정말 쑥~하고 올라간 것처럼. 그것만으로도 요즘 전 너무 행복해요."

집... 어쩌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집. 어디를 가도 이방인 같았던 나를 다독여 주는 것은 요리하는 게 불편하지 않을 주방과 따뜻한 거실, 그리고 안락한 침실이 분리된 공간의 쉴 곳이었다. 게다가 그녀를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예비신랑(남자 친구)까지 그녀 곁에 있다니, 축복할 일이었다.

"언니, 저와는 다르게 부족함 없이 자란 것 같아요. 본인이 번 돈은 모두 저축하고 부모님 카드로 지금껏 생활했대요. 그래서 이만큼 많이 모을 수 있었던 거겠죠?"

너무 부모님께 의지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차라리 부족함 없이 사랑받고 자란 그 남자가 그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그리고 지금도 받고 있는 사람이, 또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다. 그렇게 꽉 찬 사람과 함께 지내는 일상은 안 봐도 평온할 것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래도 못다 한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앞으로 짧게라도 종종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우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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