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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티 Mar 20. 2024

놀이터에서 이름 모를 초등학생을 응원하다

상담교사로 살아남기

초1 아들이 하교하면 같이 놀이터를 간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학원을 기다리는 형, 누나 초등학생들이 많다. 으레 아들과 놀아주던 중 남자 아이들끼리 문제가 발생했다.


놀이 중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뺨을 때린 것이다. 그 세기가 엄청나지는 않았지만 맞은 친구는 꽤 놀란 눈치였다. 왜냐하면 얼굴을 가린 손 사이로 그 친구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순간 내가 중재를 해야 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나보다 더 빨랐던 건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이었다. "야 이건 아니지" "이거 학교폭력이야" "야 사과해 빨리" 등등 모두 한 마디씩 거들었다.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폭력에 대해 과거보다 민감하다고 느끼며, 옳은 행동을 위해 서로 돕는다고 생각하니 괜히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다. 뺨을 때린 친구도 난감해하며 사과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친구들 여론이 좋지 않자 뺨을 때린 친구가 서서히 맞은 친구에게로 다가갔다. 바로 그 때!


뺨을 맞은 친구가 때린 친구를 와락 끌어안으며 하는 말이 "쨘 내 연기 어땠어?"였다. 그리고 깔깔 웃으며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뺨을 때린 친구는 상대방이 연기였다고 하니 사과할 기회조차 잃어버린 듯했다. 친구들 또한 맞은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자 사과를 하라는 말과 심했다는 말도 쏙 들어가 버렸다.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지만 뺨을 맞은 친구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묘한 표정이었다. 학교폭력이나 갈등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변의 친구들과 어른들이 나서서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 현장에서 가 먼저 자신을 보호해줘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나는 상담을 할 때 갈등상황에서 상대방에게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꼭 용기 내어 자기주장을 해 볼 것을 권유한다. 그럴 때 학생들이 하는 말은 "얘기해봤자 똑같아요." 혹은 "변하는 것이 없어요."이다. 나는 변하는 것은 분명 있다고 알려준다. 상대의 반응이 겉으로 미적지근했을지라도 마음속으로 흠칫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에서 상대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스스로를 지키고 존중하려고 노력할 때, 타인도 당신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대할 것이다. 자신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주변 사람들 또한 내가 나를 대하는 것과 같이 나를 존중하지 않고 말 것이다.


다음번에는 아이가 용기 내 볼 수 있기를, 스스로를 지키는 경험을 해 볼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아이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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