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하교하면 함께 놀이터에 갑니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학원을 기다리는 형, 누나 또래의 초등학생들이 많습니다. 으레 아들과 어울려 놀아주던 중,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작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놀이 도중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뺨을 때린 것입니다. 그 세기가 엄청나지는 않았지만, 맞은 친구는 꽤 놀란 눈치였습니다. 얼굴을 가린 손 사이로 그 친구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순간 제가 중재를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저보다 더 빨랐던 것은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야 이건 아니지.” “이거 학교폭력이야.” “야, 사과해. 빨리.” 등등 모두가 한마디씩 거들었습니다.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폭력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민감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옳은 행동을 위해 서로 돕는 모습을 보며 괜히 뿌듯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뺨을 때린 친구도 난감해하며 사과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습니다.
친구들의 여론이 좋지 않자, 뺨을 때린 친구가 서서히 맞은 친구에게로 다가갔습니다. 바로 그때, 뺨을 맞은 친구가 때린 친구를 와락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짠! 내 연기 어땠어?” 그러고는 깔깔 웃으며 상황이 일단락되었습니다. 뺨을 때린 친구는 상대방이 연기였다고 하니 사과할 기회조차 잃어버린 듯했습니다. 친구들 또한 맞은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자, 사과하라고 하거나 심했다는 말도 모두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지만, 뺨을 맞은 친구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듯한 묘한 표정이었습니다. 학교폭력이나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변 친구들이나 어른들이 나서서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일차적으로 현장에서 가장 먼저 자신을 보호해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저는 상담을 할 때 갈등 상황에서 상대에게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꼭 용기 내어 자기 주장을 해 보라고 권유합니다. 그럴 때 학생들이 하는 말은 “얘기해봤자 똑같아요.” 혹은 “변하는 게 없어요.”입니다. 저는 변하는 것은 분명히 있다고 알려줍니다. 상대의 반응이 겉으로는 미적지근했을지라도, 마음속으로는 흠칫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은 천지 차이라고,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에서 상대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스스로를 지키고 존중하려고 노력할 때, 타인도 그 사람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대하게 됩니다. 자신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주변 사람들 또한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 그대로 나를 존중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다음번에는 아이가 용기를 내볼 수 있기를, 스스로를 지켜내는 경험을 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