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화가 났다는 착각, 범인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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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자꾸만 화가 나는 이유를 그저 육아 스트레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때로는 다른 이유가 숨어있다. 이를 심리학에서 '전치'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치는 놀랍고 굴욕적이거나 불쾌한 기분과 충동을 조금 더 만만한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본인은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것'인데 쉽게 말해 화풀이다. 예를 들어 아빠, 엄마, 다섯 살 자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엄마는 주말에 티비만 보고 집안일을 하지 않는 남편을 보고 화가 난다. 그런데 남편에게 화를 내면 부부싸움으로 번지고 갈등이 심해지니, 조금 더 덜 위협적으로 보이는 자녀에게 장난감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이다.
사실은 남편에게 화가 났으면서 사소한 이유로 자녀를 혼내는 것이다. 자녀를 혼내면 남편으로 인해 내면에 쌓여있던 분노와 긴장감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것인데, 이는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또 혼이 난 자녀가 화가 나지만 부모에게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장난감을 던지는 행위를 한다고 가정하면 자녀 또한 부모에 대한 분노와 공격성을 장난감에게 돌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녀도 아주 사소한 행동이지만 무의식적으로 덜 위협적인 사물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패턴이 가족 안에서 반복되면, 계속적으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약한 대상이나 사물로 옮겨가는 악순환을 겪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부모는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잘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배우자에게서 느끼는 것인지, 자녀로부터 오는 것인지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약자인 자녀가 자주 피해를 많이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치'는 나도 모르게 자주 사용하는데 어떻게 잘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일단 오늘따라 왠지 가족의 행동이 뭔가 거슬린다면 내가 심리적 문제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있고, 직장이나 육아로 스트레스 상황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면 가까운 가족에게 쉽게 화풀이를 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주변에 화가 나서 화풀이를 하고 싶을 때면 냉정하게 생각해 보고, 내가 어느 대상에게 화가 났는지 잘 구분할 수 있다면 조금 더 건강한 가족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범인은 가까운 곳에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