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상담교사로 근무하면 소위 '문제학생'으로 불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단 부적응을 겪는 학생들을 '문제학생'이라 부르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어려움이 있는 학생으로 부르지만 통상적으로 '문제학생'으로 불리게 되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학생을 이해할 때 그 학생이 보이는 독특한 행동들은 십수 년을 살아가면서 획득한 생존에 가장 유리한 전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주관적 세계에서 획득한 삶의 경험들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눈치를 많이 보면서 비위를 맞추는 쪽으로 자신의 행동을 발전시켰고, 어떤 사람은 크게 화를 내서 주위의 의견을 잠재우는 방법을 사용해 성공한 경험이 많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자신만의 스킬은 저마다 다를 것인데 '문제학생'으로 불리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지도가 어려운 방식이나 독특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이득을 얻는 등의 성공경험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생존과 적응을 위해 필요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성장과정에서 가장 많은 상호작용을 했을 부모나 주 양육자와의 관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해서 학생의 배경정보 중 부모-자녀 간의 히스토리와 역동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자녀 관계에 좋지 않을 경우에 학생들은 이와 비슷한 언행을 보이는 교사를 만나면 쉽게 부모의 모습을 투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교사는 권위자이면서 청소년 시기에 가장 자주 만나는 어른이기 때문에 내가 늘 보고 자란 부모의 모습을 투사하기 가장 좋은 대상입니다.
물론 부모-자녀 관계가 좋은 경우에도 투사가 일어나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어른이나 권위자에 대한 신뢰나 긍정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크게 문제 될 지점이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 부정적인 감정이 많은 학생이 있다면 약간의 거친 언행을 보이는 교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장난으로라도 손을 올리는 등의 폭력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면 아이는 금방 투사가 일어나게 되면서 부모에게 경험했던 부정적 감정을 그대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부모에 대한 내면의 분노와 공격성이 그대로 교사에게로 향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부모와의 관계에서 심각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킬만한 언행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십수 년 쌓아온 부정적 감정의 덩어리들을 한 두 가지의 작은 사건만으로도 통째로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투사는 학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는 무의식적인 과정이므로 학생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바로 학생이 경험한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로부터 느낀 불신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반대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이지 않고 긍정적인 관심으로 지켜보는 학생을 이해해 주는 어른으로 곁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자 할 때 교사는 학생으로부터 다시 도전을 받을 것입니다. 학생은 오히려 더 문제를 일으키거나 반항적으로 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학생은 자신이 경험했던 어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신념을 유지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믿지 못할 존재이고 폭력적이며 강압적이다' 등 학생이 획득한 어른이나 교사에 대한 신념이 있을 것인데 이를 유지하고 다시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문제를 일으켜서 교사가 분을 못 이겨 화를 내거나 자신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면 학생은 '어른들은 역시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투사적 동일시'라고 합니다. 학생이 원하는 신념에 맞게 교사가 행동하도록 이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학생이 놓은 덫에 빠지지 않고 학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이 경험한 삶의 물줄기를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으므로 육 개월이나 일 년을 투자해도 때로 그 변화는 작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변화를 함께 지켜봐 주고 응원하면서 조금씩 더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 물줄기가 어른들에 비해 깊지는 않기에 아이들은 더 유연하게 변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긍정적인 관심으로 지속적으로 지켜봐 주는 어른이 있다면, 자신이 입고 있는 갑옷 같은 옷들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조금씩 타인과 세상을 믿어줄지 모릅니다.
옛 동화에서 바람으로 나그네의 옷을 벗길 수 없었습니다. 따스한 햇살을 지속적으로 비춰줄 때 나그네는 옷을 벗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