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밤늦게 귀가하는 자녀로 인해 갈등을 겪는 가정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한때는 품에 안겨 재잘거리던 아이가 이제는 방문도 잠그고, 서서히 대화도 줄게 되며 말도 없이 나가버리니, 부모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보이는 이러한 행동들은 단지 ‘버릇없음’이나 ‘약속을 어기는 것’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청소년 나이에 속하면, 야간에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무리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기에 밤에 깨어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청소년기는 생물학적으로 '번식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는 시기이므로, 밤에 깨어 활동한다는 것은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고 번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현대에도 마찬가지로 밤에 외출해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외모에 신경 쓰며 SNS에 올릴 사진을 고심하는 행동들은 자신의 매력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한 전략 중 하나입니다. 청소년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이 많고 활기찬 곳으로 향하게 되는데, 지금 시대에는 편의점 앞, 야외 벤치, 친구들과의 야간 모임, SNS 활동 등이 이에 속합니다.
청소년 중 일부 학생들은 통금 시간을 어기면서까지 친구들과 어울리는데요.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가정'에 숨어 있습니다. 학생들과 상담해 보면 귀가 시간이 늦는 주된 이유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너무 좋아서라기보다 집에 들어가는 것이 엄청 싫어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집은 편안한 쉼터이나 자신을 지켜주는 안전기지여야 하지만, 어떤 아이들에게는 비난과 무시, 침묵과 갈등이 반복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집에 돌아가면 잔소리가 기다리고, 비교가 따라오며,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당연히 아이는 집 밖에서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아이에게 밤거리는 단순한 배회가 아니라 또래친구들 사이에서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귀가 시간은 단순한 시간문제가 아니라 아이와 가정 사이의 정서적 거리를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밤늦게까지 밖에 있는 아이를 향해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니?”라고 묻기 전에, 부모가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집은, 아이가 돌아오고 싶은 안전하고 편한 공간일까?”하고 말입니다.
오늘 밤 우리 아이의 마음은 어디쯤 있을까요?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은 청소년기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안전한 보호 속에서 세상을 탐험할지, 길 위에서 위태로운 탐험을 이어갈지는 가정이 얼마나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인가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