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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아버지, 기억 속 어머니 그리고 아이

by 교교

석현의 손을 잡고 학교를 찾은 피부가 까무잡잡한 남성은 자신을 큰 아버지라고 소개했다. 그는 산골에 위치했지만 기숙형 중학교였던 우리 학교에 석현을 전학시키고 싶다고 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아이의 어머니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올해 갑작스레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면서 아이가 갈 곳이 없어 자신이 사는 곳으로 일단 데려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오늘은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이라 했다.


그렇게 석현의 삶은 갑작스러움의 연속이었지만 의외로 태연해 보였다. 다음날부터 학교생활과 기숙사 생활은 바로 시작되었고, 석현은 학교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석현은 모범생이었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아이는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거나 튀는 행동을 하는 친구들을 싫어했고 이해하지도 못했다. 나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낯선 환경 속에서 석현이 터득한 생존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추측했다. 석현과 상담했을 때 갑작스러운 부모의 죽음조차도 아이는 의연히 받아들이는 듯 말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자신은 괜찮노라고 말했다. 긴 회기의 상담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종종 석현을 불러 우리는 상담했고,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이 다가오자 우리의 관계도 이전보다는 두터워져 조금씩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 날은 석현이 핸드폰에 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마 아버지와 나들이를 갔을 때 찍은 사진이라 했고, 사진은 두 세장이 전부였다. 사진 속 아버지는 사진을 찍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 같아 보였다. 석현은 부와 그리 친하지 않았다. 아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모와 보냈으며, 모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부에게로 와서 근 일 년 정도 함께한 세월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부는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쁜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던 석현은 자신에게 어머니 사진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어머니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성격이었는지, 석현에게 어떤 엄마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머니 산소는 양산에 있었지만 석현이 혼자서 보러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큰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고 왔으니 사정이야 모르지만 어머니를 모신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문득 석현에게 질문했다. "방학이 되면 선생님과 어머니 계신 곳에 같이 가볼까?" 나는 진심으로 석현이 같이 가달라 하면 같이 가 줄 요량으로 아이에게 물었다. 석현은 살짝 놀란 기색이었으나 특유의 침착함을 유지하며 답했다. "나중에 제가 혼자 가볼게요. 같이 안 가주셔도 돼요" 그것이 석현과 나눈 부모님에 대한 마지막 대화였다.


이듬해 석현도 심장질환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학교를 옮겨 뒤늦게 소식을 접했다. 함께 근무하던 선생님들은 일부러 소식을 알리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여름의 녹음이 서서히 퍼져나가듯 멀리 있는 내게도 소식은 전해졌다. 석현의 삶은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다. 그의 짧은 삶 속에서 나는 잠깐 스친 인연 중 한 명이었으리라. 그에게 좀 더 좋은 어른으로 남아주고 싶었지만 핑계도 많았다. 석현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해내는 모습이 기특했다. 기특한 만큼이나 석현은 더 애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괜찮다던 석현, 나는 그에게 괜찮지 못하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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